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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n 23. 2021

엄마는 아직도 내 걸음마를  보시면서 웃음 지으실까?

엄마와 백화점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해서 걸음걸이가 경쾌하고 신이 난, 작고 여전히 소시지 같은 다리를 가진 아이가 탔다.  엘리베이터는 만석이었고 아이 엄마가 내리고자 하는 층에 다다르자 아이 엄마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릴 것을 우려해 아이를 안고 내리려고 했다. 비로소 자기의 의지대로 몸을 가눌 수 있게 된 아이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본인이 직접 걸어 나오기를 고집부렸다. 뒤뚱뒤뚱 아장아장 걸어 내리는 아이를 보며 크고 작은 가방을 둘러 매고 조바심에 빨갛게 달아 오른 얼굴을 한 아이 엄마 뒤로 지켜보는 사람들은 아주 잠시 한마음이 되어 아이의 한 걸음 한 걸음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가족들과의 시간보다 더 즐거웠던 때였다. 졸업식 같은 날은 식이 끝나면 가족들과 함께 평소에는 가지 않았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데 나는 어디로 가는지, 뭘 먹을 지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더 오래 있고 싶었을 뿐.

전학 온 뒤로 제일 친하게 지냈던 지선이, 혜정이와는 6학년 때 다른 반이어서 졸업식 내내 떨어져 있어야 했다. 졸업식 끝나고 겨우 만나서 할 얘기가 잔뜩 쌓여 있는데 각자의 가족들에게 바로 돌아가야 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엄마, 나 지선이랑 혜정이랑 같이 가서 밥 먹으면 안 돼?"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고 간 뒤에 엄마는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시며 못 이기는 척 나를 보내셨다.

그리고 그 뒤로 아버지는 내 졸업식에 오실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식사는 하셨는지, 그냥 집으로 가셨는지 물을 수가 없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일이 참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장 후회스럽고 죄송한 일 중 하나이다.

다른 애들은 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가족들과 함께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친구들이랑 밥 먹는 다고 신이 나서 나를 보러 온 가족들을 두고 가버리는 내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어떠셨을까?



첫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날이었다. 원래는 혼자 가는 계획이었는데 막판에 친구가 합류하게 되어 친구와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 되었다. 친구 덕분에 걱정과 우려에서 설렘과 흥으로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가족들과 처음으로 오래동안, 그것도 해외로 떠나는 길에 어머니와 언니는 공항까지 함께 해주셨다.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에 내내 표정이 어두우셨던 어머니를 두고 나는 친구와 공항에서 만날 약속을 정하며 한층 들떠 있었다.

처음 싸 보는 장기간 해외여행 짐에 이것저것 다 챙겨 넣다 보니 무게가 초과돼서 공항 한 구석에서 짐을 덜어내야 했다.  덜어낸 짐만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나는 마치 학교 가듯이 “ 엄마 안녕~”을 외치고 친구랑 희희낙락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출입국심사소로 유유히 들어갔다. 가벼워진 내 발걸음 만큼 엄마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셨을 거라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를 만나러 호주로, 뉴질랜드로 온 가족, 친구들을 공항에서 배웅할 때마다 그때의 순간을 후회한다.

모든 것을 걸고 키워 온 자식이 곁을 떠나는 모습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헤아릴 생각도 못한 채 신이 나서 홀연히 떠나버리는 나의 뒷모습을, 내가 남겨놓은 한 보따리 짐을 옆에 쥐고 보시는 엄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나도 한때 걷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기쁨이 되었을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뒤뚱뒤뚱 걷다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걷는 내 뒷모습이 엄마의 즐거움이 되었을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의 뒷모습이, 내 걸음이 예전의 흐뭇함은 온데간데없고 엄마를 쓸쓸하게만 혹은 공허하게만 만들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작은 아이가 내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엄마께 여쭈었다.


엄마, 지금도 나 걷는 거 보면 흐뭇해?

아까 그 아이 엄마 얼굴처럼 엄마 얼굴도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주위를 둘러보시고는 황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셨다.

대답도 없이.. 내리려던 층도 아니었는데… 마치 나와 일행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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