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자! 외국에서!! 이왕이면 재미있게!!!
응 아니야.
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같이 일하는 셰프가 새벽 5시 출근하며 인사하는 나에게 신기해하면서 물어봤다.
호텔 조식 팀으로 일한 시간을 따지자면 뉴질랜드 약 2년, 호주 브리즈번에 있는 호텔에서 약 1년 반, 지금 호텔에서 약 2년 정도로 약 8년여의 호텔 경력 중 반 이상 되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늘 불행하다.
절대로 적응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적응되지 않을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른 새벽 출근에도 행복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내가 마음 놓일 곳 하나 없는 여기, 다른 계절을 살고 있는 이곳에서 버텨나가는 비법 이자 가장 자주 애용하는 가면이기 때문이다.
'웃는 상'이기는 하지.
‘남자들은 돌아보고 여자들은 따라 하는’ 절세 미녀는 아니지만 웃는 게 예쁘다는 말은 많이들 했다. 그냥 예쁘다 고는 차마 말이 안 나와서 "웃는 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더 낫다"라는 말일 수도 있지만 순진했던 나는 그게 나름 ‘남들이 보는 나' 인가하고 그냥 웃자 하고 웃는 통에 그게 인상이 되었나 보다.
그래서 먹혔다. 한국 말고 외국에서…
아닌 사람들도 많다고 해도 아직까지 ‘아시안들을 shy 하다’라고 말하는 로컬들이 대부분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문화 차이일 수도 있고(두 개 다 일수도 있고), 본디 한국에서부터 내성적인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상, 외국에서는 본인의 수줍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알아서 다가와 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다. 그게 이들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워낙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걸 선호하지 않고 말로든 행동으로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농담을 걸면 수줍게 배시시 웃고 넘어가는 아시안들에 비해 꽤나 신선했나 보다. 영어를 본인들과 같이 구사하지 않아도 여기저기 나가 놀 거리가 생기면 잘 부르기도 하고 허구한 날 장난을 주고받는 게 내 일터에서의 일상이다. 뭐 그런 게 싫다면 할 말 없지만 나는 그게 한국인들보다 현지 친구들과 주로 어울리며 내가 영어를 이 정도라도 구사할 수 있게 된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대학교를 나왔지만 생활 영어는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느는 게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같이 일하는 친구가 자기가 하는 복싱 클래스에 같이 가자고 한 적이 있었다. 솔직히 너무 가기 싫었지만 어떤 기회가 생길지 모르니 억지로 나가봤는데 몸소 실천으로 응답하는 내가 반가웠는지 그 길로 그 친구와 복싱, 등산, 헬스장, 조깅 등등 운동 buddy가 되었다.
예뻐해 주니까 영어 쓰는 게 덜 두렵더라고…
리액션이 좋고 장난도 잘 받아주는 걸 넘어서서 때때로 골 때리면서도 참신하게 되갚아 주니까 남녀노소, 직책 상관없이 나랑 얘기할 때는 좀 유해 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사람까지는 아니라서 눈치도 많이 보고 영어에 대한 부족함도 너무 느끼기 때문에 집 밖을 나가면 일단 긴장모드인데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순간 부드러워지면 질문을 할 때도, 못 알아들은 걸 확인할 때도 조금 덜 주눅 들고 말할 수 있게 되어 대화를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스워 지라는 건 아니다.
적극적인 자세, 밝은 분위기가 효과가 좋다는 것이지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아무 말에나 다 웃으며 반응하다가는 만만한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안될 수도 있다. 기분 나쁠 때는 필요하다면 정색도 해야 하고 본인의 코드와 맞지 않은 농담에 억지로 웃으며 입에 경련을 일으킬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본인의 상식선에서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고, 본인의 기준선을 넘는 장난이 온다면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
각자의 성격에 맞는 노하우가 있겠지만 나는 일단 영어에 대한 부담감, 타고난 수줍음 들은 잠시 내려놓고 ‘고민보다는 Go’를 해 보는 걸 추천한다.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이라면 그냥 해버리고, 현지 친구들의 파티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될까 봐' 고민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갔다가 바로 돌아오더라도 일단 가보고 (그렇게 얼굴도장이라도 찍어야 다음에 또 어울릴 기회가 생기니까), 말을 걸어볼까 말까 할땐 일단 내뱉어 보면 수습은 어떻게든 되게 되어있으니까… 처음에는 수습되는 과정에서 나를 쥐구멍을 찾게 할 때도 많지만 쥐구멍 몇 번 찾다 보면 요령이 생겨서 구멍 말고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 막 영어로 쉘라쉘라 농담하면서…
가서 또 세상 반갑게 인사하지…
나는 아침 형 인간이 될 수 없는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 4 시 알람 맞춰 두고 ‘다시 알림’을 반복하면서 30분을 버티다 울면서 일어났지만 막상 일하러 가서는 사람들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나를 보면 항상 밝게 인사해 주는 사람... 누가 싫어하겠어? 라면서...
어느 연예인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행복해 지기 위해서 웃는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