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Jun 21. 2021

퍼시픽 파라다이스, 독방 쓰실 여자분 구함

진짜 쉐어하우스 이야기

2주 뒤에 집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요새 한국에서도 쉐어 하우스(공동 주거 시설)라는 공간이 많이 생겨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져 있는 것 같은데 living-cost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외국생활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쉐어 하우스 생활이다.

보통 쉐어 생활에는 두 가지의 경우로 나누어진다.  


내가 렌트를 해서 쉐어 할 사람을 구하는 경우,

내가 누군가가 렌트한 집에 정해진 돈을 지불하며 쉐어 생으로 들어가는 경우.


쉐어를 하면  가장 비싼 독방부터 2인 1실도 있고 시드니나, 멜버른, 브리즈번 같은 대도시들은 3인 1실도 흔하며 따듯한 날씨를 이용해 베란다에도 침대를 두고 일명 Sun room이라 칭하며 다른 방에 비해 저렴하게 내놓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불법, 집을 렌트할 때는 집 크기에 따라 수용 가능한 인원이 정해지는데 이렇게 되면 렌트한 사람들은 거의 본인은 렌트비를 안 내고 세이빙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주방의 모든 가전제품과 식기류 등은 같이 사용하고 화장실은 개수에 따라서 같이 쓰는 사람 수가 많기도 하고 혼자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전기, 인터넷 요금은 인원 수대로 나눠 내기도 하고 일일이 계산하기 싫어하는 나같이 게으른 사람들은 렌트비에 처음부터 포함시켜 받기도 한다.

렌트를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전에 별문제 없이 렌트했던 히스토리안정적인 수입원이 확인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누군가가 차려놓은 세팅에 내 짐만 살포시 얹으며 지냈었는데 연차가 쌓이니 이제는 렌트를 해서 사람을 구하는 게 마음 편해졌다.

그래서 이번에 지역을 이동하면서 회사, 동네 적응도 끝냈고 내 주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렌트비의 부담을 줄이고자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셰어 하우스를 선택하는  가장 주된 이유이다.)

지역마다 한국인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들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부터 젊은이들이 한 집에 모여 산다는 걸로 비추어 키친에서 각자 요리를 만들며 "저기... 소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하다가 ‘니거 내 거 없는 사이’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같이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어느새 누군가의 무릎에 앉게 되는 등의 섣부른 로맨스를 기대하기도 하는데 뭐 그렇게 되는 경우가 얼토당토 없는 소리라곤 할 수없지만, 실상은 남의 소금 눈치 없이 계속 빌리다가 사물함 걸어 잠기는 꼴 보게 되고, 거실에 앉아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아 주구장창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게 되는 시나리오가 더 자연스럽다.

(나의 쉐어 생활에는 변천사가 있었는데 6명이서 한방을 쓰다가 4명, 두 명까지 쓰다가 잘 맞지도 않는 누군가와 방을 나눠 쓰는 것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몇 년 전부터는 독방만 쓰고 있다. 진짜 초창기에 남녀 혼방도 한번 써봤고, 남녀 다 같이 사는 집은 비일비재했다가 이성과의 동거에서 오는 불편함이 커서 지금은 무조건 금남의 집을 지향한다. )


세 사람이 살던 유닛의 주방


나름 화려한 쉐어 생활을 경험해 오며 처음에는 문화교류 및 영어 증진 셈 치고 외국인들만 있는 집을 찾아 살기도 했었다. 사실 잠깐 외국 생활하다가 가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계속 지낼 예정인 한국인 친구 별로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집 안팎으로 문화 차이를 느껴야 하는 게 피로도가 너무 쌓이고 쌓이는 만큼 해소할 곳은 없어 이제는 집만큼은 한국인들과 사는 걸 선호한다.  


외국인들과 살면서 맞지 않는 부분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 그래서 바닥이 항상 더러운데 그들은 개의치 않고 신발을 신었다 벗었다 하며 막 다니는 그 꼴이 너무 보기 싫었다.

그리고 음식. 확실히 요즈음은 아시안 음식들이 대세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냉장고를 쓰는 상황에서 매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김치 냄새를 맡아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또 다른 얘기가 될 수 도 있다. 뭐 아시안이 살고 있는 집에 본인이 걸어 들어오는 경우라면 본인이 감당할 마음이 있는 것이지만 내가 누군가의 집에 들어갈 때는 김치나 심지어 우리나라 음식은 아니지만 한국인의 친구인 스팸도 안 먹는 조건을 내거는 외국인들도 더러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다 잘 지내는 건 아니다. 한때 같은 방을 쓰던 한 한국인 친구는 문을 여닫을 때 쾅쾅 소리를 낸다던가, 시도 때도 없이 깔깔 거리며 통화를 하고 한밤중에도 방 불을 켜대서 방해가 된 점 등등 부탁해야 할 것들이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나와 그냥 내가 이사를 가버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보통 아시안들이 외국인들보다 씻을 때  시간이 더 필요해서 화장실 사용에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쉐어 하우스에서는 (특별한 날 제외) 식사를 늘 같이 만들어 먹는다거나 식재료를 같이 사용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커플이나 친한 사람들은 더러 그렇게 하기도 하는데 대게 생활패턴이 다르고 식성, 먹는 양들이 달라서 일반적으로는 잘 안 함) 내 식재료를 자기 것인 양 쓰는 사람들도 있고 친구들을 허구한 날 데리고 와서 나의 고요함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예전에 같이 살았던 체코 여자애는 친구를 데려와 놀다가 양해 없이 재우기도 했었는데 그러고는 친구가 샤워도 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같이 있는 일이 빈번해지길래 얘기를 했더니...


“내가 집에 있는 동안 내 친구를 데려오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으며 내가 샤워를 이틀에 한 번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매일 샤워하는 너네들보다 물을 조금 쓰니까 내 친구가 해도 되는 거 아냐?”


라고 말하는데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이 친구는 말이 통하는 범주를 넘어 선거 같아서 그냥 2주의 시간 주고 다른 집 구해서 나가라고 권유했다. ( 보통 호주는 이사를 들어오거나 나갈 때 2주 노티스 기간을 주고 이사를 한다. 다음 사람을 구할 시간, 다음 집을 구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한국이라면 이 정도는  크게 문제 삼을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호주에서는 물값, 전기세, 인터넷 요금 등을 나눠 낸다 하더라고 그 지출이 적지 않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씩 친구들 데려오는 정도는 괜찮아도) 다 같이 타지에서 힘들게 돈 벌어 나눠내는 사람들에게 내 친구들의 소비에 인심 쓰기를 기대하는 건 좀 이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집들은 샤워 5분 내에,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 친구 입장 불가 등 하우스 룰을 정해 놓기도 한다.)


화장실이 딸린 en-suit room 을 2인실로 만듦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도 적응 기간이 필요 한데 (사랑은 뭐 먹는 거야?) 지극히 돈 때문에 얽힌 이 관계들이 잘 지내기란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이 계산적인 시작에도 나에게 인복의 증거가 되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호주에서 지역 이동할 때 렌트하기 전에 6개월 정도 머물렀던 집이 있었다.  유학 중인 고등학생 딸과 어머니가 사는 집이었는데 뭐 딱히 되게 잘 맞았던 기억도 잘 안 맞았던 기억도 없는 생활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서로에게 이슬비에 옷 젖듯 스며들게 된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전지적 내 시점에서는 같이 지내는 게 거슬리게 하나도 없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챙겨 주시는 것도 과하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는 불편해할까 봐 엄청 조심스러우셨다고…) 적당히 들리는 소음도 ‘혼자 소리 소문 없이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공포’를 덜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사를 한 뒤에도 꾸준히 안부 연락을 하고 만나게 되었고,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지금 집까지 휴가차 놀러 오실 때도 친동생 챙겨주듯이 한인마트서 바리바리 장 봐오시더니 2박 하는 동안 파김치며 각종 반찬들을 만들어 주시고 가시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인들이 많이 떠나 사람이 잘 안구해지기도 했고, 적응 기간이라 여기며 외국 나와 처음으로 혼자 살기를 6개월.

진작에 사람을 구했다면 적어도 200만 원 정도는 더 저축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 보니 아직은 혼자 살 시기는 아닌 것 같아 다시 사람을 구했다.


언니 같고, 친한 친구 같은 사람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냥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서로 편안하게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진짜 술도 한잔 할 수 있는 사이가 되면 더 좋고…

잘 지내봐요 SJ 씨!!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의 나라에서 나는 그냥 간장 종지가 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