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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n 30. 2021

나에게만 특별한 남의 집 얘기

호주에서 만난 가정 이야기

같이 일하던 친구의 21번째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다. 외국에서는 성년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21번째 생일파티는 심혈을 기울인다 길래 경험 삼아 친구라고 하기도 좀 민망한 나이차의 동료였지만 다른 친구들과(역시나 까마득한 나이 차이를 자랑하는) 함께 파티 장소인 친구의 집으로 갔다.


성대하게 할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해서 가면 잘 모르는 친구의 다른 친구들도 많겠구나 했는데 막상 가보니 친구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할머니부터 삼촌, 이모들에 어머니의 친구분들 가족까지… 꽤 넓은 집이었음에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집 안 한쪽에서 친구들이 음주가무를 하고 테라스에서는 연세가 있으신 다른 가족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시고 방에는 각 가정에서 따라 나온 아기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친구들과 온 일가친척들이 함께하는 생일도 참 신기했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소개받을수록 내가 십 수년간 한국에서 쌓아온 정서와의 충돌에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할 지경이었다.  



동성애자인 친구의 여자 친구는 그전에 소개를 받아서 알고 있었는데  그날 가보니 그저 여자 친구로서 자리를 빛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호스트로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남의 집에서… 정작 집주인인 부모님은 다른 손님들이랑 즐기시느라 여념이 없고 친구의 여자 친구가 손님 접대부터 일정 진행까지 파티플래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날 친구의 24살 언니를 처음 소개받았는데 언니는 이미 아이가 셋이었다. 아이가 셋에 아이아버지는 둘이라고 우리 주위를 뛰어다니고 있던 조카들을 보면 말해줬다.(심지어 한 명은 신원미상)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길래 '별일 아닌 듯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일 적당한 리액션을 고민하던 중, 친구의 부모님께서 잔을 치시며 주위를 집중시키셨다. 그리고 생일 케이크를 자르기 전에 친구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생일인 친구가 욕쟁이가 되기 시작한 계기부터 잃어버릴 뻔한 얘기 등등 유쾌한 그녀의 성장기가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처럼 부모님, 자매들 그리고 그녀의 여자 친구의 입을 통해서 들려졌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나라도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과연 우리네 가족들은 동성애자인 자식을,  어린 나이에 부모 중 한 명이 다른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 자식을 한 여름 백화점의 에어컨 바람보다 더 쿨하게 사람들 앞에서 공개할 수 있을까? 사실 내가 그 부모님들이 이 상황들에 대해 마음고생을 얼마나 하셨는지 혹은 하긴 하셨는지에 대한 내막은 전혀 알지는 못한다. 다만 내가 그 생일 파티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점은 그 누구도 그들의 자식들의 상황을 ‘눈물 찍 콧물 찍’ 할만한 사연들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집 자식들은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이 여느 집 자식들처럼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




그저께 또 다른 친구의 집에 초대받았다. 친구가 밥해준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간 것이었는데 가서 보니 친구 엄마가 해주시는 밥이었다. 원래 식성이라면 삼겹살 3인분 정도는 비냉이랑 와구와구 뿌시고, 상큼하게 치맥으로 마무리하는 건데 예기치 못한 친구 부모님, 여동생, 남동생까지 함께하는 식사에 개미 눈물만큼 먹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사실 가시방석은 식사 전부터 깔아주셨다. 밥이 준비되는 동안 영화를 보고 계시는 부모님을 두고 친구랑 발코니에서 뒷마당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부모님 두 분이 보시던 영화를 두고 밖으로 의자를 가지고 차례로 우리 옆으로 오시더니 얘기에 합류하시기 시작했다. 대화 내용은 참 다채로웠다. 코로나 얘기부터 본인들 구입 예정인 캠핑카 얘기에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내 신상을 터시고 막 학교를 졸업한 내 얘기로 호주의 교육열에 대한 얘기까지 다양했다. 그러다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족 중 누구든 한 번씩 주방에 가서 잘 익어가고 있는 저녁 메뉴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찾아온 식사 시간,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식사 시간 동안 끊임없던 그들의 대화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의 생활들에 대해 속속들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형제자매 4명의 각양각색의 친구들과 부모님 지인들까지 다들 실명이 오고 가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날 그 친구의 형제자매는 처음 보는 자리였는데 너무 예상 가능하게 그들은 이미 나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식사 후, 부모님은 뉴스를 보러 소파에 앉으시고 친구가 그릇들을 정리해서 식기 세척기에 넣고 소파에 앉으니 다른 형제자매가 싱크대를 닦고 남은 음식들을 정리하며 마무리를 한다. 누가 뭐 하라고 지시하는 말도 딱히 없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그리고 각자 맥주든 와인이든 기호에 맞는 음료를 들고 다 같이 소파에 앉으면 뉴스를 보며 또 가족들이 새로운 대화를 이어갔다.




너무 불편했다. 그들의 화목함이 숨 막히듯이 너무 불편했다. 넓은 집, 깔끔한 인테리어, 쿨내 진동하는 엄마, 자상한 남편 및 아버지, 우애 좋은 자식들, 있는 그대로 사랑으로 받아주는 친척들까지 초대를 받았어도 내가 낄자리는 전혀 없었다. 어쩌면 나는 영화에서나 보던 이런 '단란함이 만발하는 가정'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큰 피해의식이 없었던 것이었는데 현실에서 직접 보고 나니 그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감정이 답답함과 우울함으로 왔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자란 가정 안에 사랑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내가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코끝부터 찡해지고 목이 멘다.


언젠가 몇 년이 지나도 호주에 와있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신다는 어머니를 둔 한국인과 얘기한 적이 있다. 그분은 엄마랑 4시간도 거뜬하게 통화하는 나를 부러워했었다. 엄마랑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을 수가 있냐면서…. 전화통화를 하면 엄마는 종종 언니랑 조카들 얘기하시면서 예전에 나 키우실 때 나한테 못해줬던 것들이 생각나신다며 괜찮다고 해도 그렇게 미안해하신다. 그리고 내 나잇대 다른 사람들은 조카들한테 몇 백만 원짜리 전동 자동차도 플렉스하고 그러던데 여전히 내 앞가림만 하기도 바쁜 나에게 우리 형부는 ‘포기하지 않는 게 제일 빠른 길’이라고 하시며 아직도 용돈을 보내주신다.  


거봐, 우리 집 얘기하니까 또 눈물 먼저 나잖아…


그래! 나도 가족 있다!! 니들만 있냐 이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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