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을 맞이하여 나보다 꼭 서른 해를 더 보내고 계시는 어머니께.
푸르고 싱그러운 젊음이 다 끝난 것 같은 아쉬움으로 마지막 잎새를 떨어뜨리는 감정에서 만난 여자 나이 서른은 마치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서는 기분이지요.
여전히 막막하고 여전히 불안하지만 삼십 대의 시작, 이 시작에서 오는 묘한 희망의 불씨가 마음속에 생기기도 해요.
누군가는 혼돈의 아홉 수를 빨리 끝내고 안정이 될 것 같은 기대로 서른을 기다린다고도 하더라고요.
아마 엄마는 나이 서른을 체감하기도 전에 엄마의 정신을 쏙 빼놓기 시작한 언니와 엄마 뱃속에서 엄마를 만날 날을 오늘내일하고 있는 저 때문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실 거예요.
엄마와 곧 세상에서 만날 막내딸은 한동안 엄마 속을 어지간히 썩일 거예요. 반장, 부반장을 곧잘 해서 엄마에게 부푼 희망을 주다가 한동안 거짓말에, 이따금씩 엄마 지갑에도 손을 댈 거예요. 그 와중에 사춘기마저 심각하게 겪으면서 머리스타일, 옷, 모두 엄마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스타일일 거고 눈도 이상하게 뜨고 입 삐죽삐죽하면서 대화를 거부할 거고요. 그때 저 때문에 엄마 형제들과도 잠시 사이가 안 좋아지실 수도 있어요. 제가 엄마 선에서 해결될 만한 걱정거리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엄마의 신앙심이 엄청 깊어지실 계기가 되지만 신앙심이 깊어지시는 만큼 이 놈의 막내딸의 방황도 길어져서 엄마는 엄마의 노후 대책이라 믿었던 자식 도끼에 발등을 찍히면서 점점 내려놓고 체념해가는 시간에 익숙해지시겠죠. 그렇게 엄마는 뿌연 안갯속 같은 터널을 한동안 걸을 실 거예요.
엄마, 두 명의 자녀를 둔, 나보다 어린 엄마에게 희망차고 밝은 얘기만 해드리지 못해 많이 미안합니다. 엄마가 엄마의 인생을 살면서, 한 여자로의 삶을 살아오시며 외롭고 무서웠을 지난날에 제가 위로와 응원은커녕 상처와 불안함이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제가 또다시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지금 이 나이에는 미처 공감하지 못해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드리지 못한 점들에 대해서도 미리 용서해 주세요.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가서 때 되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삶 말고 조금 다른 방향의 삶 속에서 색다른 행복을 누리는 작은 딸의 모습을 보여 드릴게요. 엄마의 서른 살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즐거움들을 앞으로 경험하실 수 있게 해 드릴 거예요. 이제 건강 챙기시면서 접어 두셨던 노후대책 즐기실 준비 하세요.
엄마, 그래도 이렇게 저와 지지고 볶고 괜찮으시다면 우리 꼭 다음에도 다시 만나요.
제가 이번 생애에 속 썩여 드렸던 것 다 잊으시게 더 잘 모실 게요.
매 순간 엄마의 역량보다 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오신 엄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