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멀쩡하다가도 어김없이 우울해지는 시기가 있다.
바로 생일과 연말.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도 생일이 다가오면 알아서 돌이켜지는 나의 모습이 탄생을 ‘축하’ 받기엔 너무 보잘것이 없게 느껴져 드는 죄스러움은 자연스럽게 나를 우울함으로 도달하게 한다.
그 시기를 보내고 어떻게 저떻게 지내다 또 연말이 되어 크리스마스라는 절정으로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바라면서 내달리다가 막상 새털같이 많은 날들 중 하나처럼 지나가 버리고 나면 12월이 주었던 기대는 한해의 허무함만이 남아 그렇게 더뎠던 하루가 찰나임을 느끼면서 또다시 동굴로 들어가게 된다.
그나마 호주는 계절상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라 연말의 색감이 아주 환하고 명랑하며 호텔이라는 직업환경의 특성상 크리스마스 전 주부터 1월 중순까지는 바빠 죽겠어서 우울이고 나발이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 빨리 지나가기 만을 손꼽아 기다리기 때문에 감상에 젖어 잎새이는 바람에 괴로워할 여력이 없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어쨌든 문득문득 피곤에 쩔어 잠이 들었다가 내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깬 어느 밤이나, 나도 누군가에게 반가움이 되고 싶어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화했지만 그 누구도 받지 않아 접어 두었던 외로움이 걷잡을 수 없이 몰려올 때, 연말연시는 다들 가족들과 보내는 게 당연한 이곳이라 '미안해하며 거절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서 만날 사람도 없이 홀로 보내는 이 시간들이 지쳐 갈 때쯤 별말 아닌 것에 훌훌 털고 일어나게 될 때가 있다.
20년 지기 남사친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였다. 언젠가 나를 퍽이나 아는 체하며 속단하던 전 남친이 “내가 널 아는데~.” 라며 말을 시작하면 그렇게 기분이 나쁘더니 나를 잘 모르겠다고 하면 되려 내가 섭섭할 것 같을 정도로 많은 얘기를 나눴던, 내 얘기를 정성껏 들어주는,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워낙 주위에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할 사람이 없고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것조차도 '가뭄에 콩 나는 일'이다 보니 무심하게 내뱉는 친구의 한마디가 나의 무료한 생활에 소소한 활력이 되어 주었다.
그 전 통화에서 본인이 근래에 좋아하게 된 메뉴가 있다면서 “한국 오면 데리고 갈게.” 라며 나를 당장 귀국행 비행기 표를 검색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어디 가봤냐고 물어보더니 안 가봤다는 나를 두고 “야, 너 한국 오면 나랑 갈 데가 정말 많구나.”라는 그 친구의 말에 오늘도 일하다 말고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인간관계에 지쳐 있다는 핑계로 일을 벌이지 않고 적극적이지도 않은 나에게 함께 있으면 즐거운 오랜 친구와의 예고된 시간은 힘겨운 오늘을 버틸 수 있는 심심한 희망이 되어 주었다.
옆방 언니에게 이 소리를 하면 또 한소리 하겠다.
" 저런... 갈 데까지 갔구나.." 라면서...
나의 외할머니는 올해 아흔을 넘기셨다. 내 기억에 너무도 생생한 70대의 할머니는 어느덧 우리 엄마가 앞두고 있는 모습이 되었고 할머니는 10여 년이 넘게 위암 투병을 하고 계시면서 안 그래도 왜소한 체구는 지금 33킬로 정도로 겨우 유지되고 계신다고 하셨다.
죽음에 대해 덤덤히 말씀하시는 할머니 친구분들의 대부분은 요양원에 계시거나 병원에 계시는데 다들 귀도 잘 안 들리시고 그 외 건강 역시 여의치가 않아 이제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면 소식을 전하고 싶어도, 소식을 듣고 싶어도 직접 소통하시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가족들의 대화의 흐름에 따라가기 쉽지 않으시지만 되물으시는 것을 미안해하셔서 그냥 넘기신다고 했다. 이제는 누가 할머니께 중요한 얘기를 하겠냐면서…
더 이상 생산적이고 중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아진 것 같다고 체념한 듯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니 너무 슬퍼졌다. 그리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할머니와 시간 날 때마다 함께 하려 하고, 안락함을 제공하고, 손과 발이 되어주는 자식들과 우애 좋은 가정의 한가운데 계시는 분이 어떻게 중요한 사람이 아닐 수 있으며, 할머니와의 대화로 심신의 안정을 얻고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새해 첫날부터 할머니를 찾는 내가 있는데 어떻게 이보다 더 생산적인 존재가 아닐 수 있겠냐고…
되려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너무 고마워. 우리 손녀딸 말에 할머니가 오늘 기분이 너무 좋다. “
어쩌면 나도 할머니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할머니의 번뇌의 깊이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원하지 않은 곳에서 어쩔 수 없이 지내는 상황에서 점점 변해가는 나를 보며 생산적이지 못한 존재가 되어간다는 생각. 나도 늘 마음 한켠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나의 진심이 나와는 차원이 다른 세월을 보내오신 할머니의 하루를 밝게 만들었다는 말에, 누군가를 기분을 낫게 만들 수 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잠시 왠지 나도 조심스레 괜찮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한마디는,
지친 딸에게 힘을 주고 싶은 엄마의 문자 앞의
우리 딸.
내가 휴가차 한국에 갈 때면 엄마는 '작은 애가 한국에 왔어.' 라며 누군가와의 약속을 미루셨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우선순위 였던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