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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Dec 21. 2021

낼모레 마흔, 새삼 듣기 좋은 말.

계속 듣고 싶은 말.

 사랑받으면서 자란 티가 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된 메디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데 스스럼이 없는 친구였다.

우리가 만나게 된 호텔 induction 날 모두가 낯설고 어색한 상황이었다. 개별 점심시간을 마치고 다시 미팅룸을 들어가기 위해 줄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 틈에 메디와 눈이 마주쳐서 예정에 없던 눈인사를 하게 되었다.

방긋 웃으며 나와 눈인사를 한 메디는 말을 걸기 시작했다.


“ 너 어디 부서에서 일해?”

“ 이름이 뭐야?”

“ 오늘 점심 뭐 먹었어?”


상큼한 미소를 머금은 그녀의 말에 홀린 듯, 멀리 나가기 귀찮아 근처에서 먹은 호텔 건물 코너에 있던 점심 메뉴 케밥까지 대답하자 그녀는,


“ 아, 거기 케밥 집이 있었어? 다음에 우리 같이 가서 먹자! (feat. 상큼한 미소)


나 오늘 처음 말 섞은 애한테 데이트 신청받았어…


사람들이 종종 얘기하는 ‘사랑 많이 받은 티가 나는 사람’ 이 어떤 사람 인지 체감하게 해 준 친구였다.

그렇다. 이 친구는 ‘위로가 되는 위로’에서도 언급된 그 위로까지 잘하는 메디이다.


나이는 훨씬 어려도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표현을 잘하는 친구, 기본적으로 여유로움이 장착되어있어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관심 있게 들어주고 밑도 끝도 없는 긍정이 아닌 진심 어린 염려와 응원을 건네는 친구였다.


그 후, 우리는 함께 케밥 집도 가고 영화관도 가고 각자의 집도 놀러 다녔고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사랑받으면서 자란 티’는 내가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씁쓸)


밝은 기운이 넘쳐 흐르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메디와


며칠 전 같이 일한 할아버지 셰프의 실수를 다른 셰프가 찾아냈다. 다른 셰프들이 누구의 소행인지 계속 나에게 물어댔지만 그 실수를 범한 범인을 무조건 밝혀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고, 내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 셰프라는 상황이 너무 뻔해서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라는 것뿐이니까 더 이상 묻지 마.”


라며 끝끝내 말을 안 하는 내게 장난기가 발동한 셰프들은 급기야는 내가 범인이라고 몰아가기 시작했다.

뭐 하나 건수가 생기면 몇 날 며칠을 놀려대는 이곳 직장 동료들의 특징상 나는 그날의 먹잇감이 되었고 정말 일이 끝날 때까지 하루 종일 놀려댔다.


이튿날, 그 실수를 저지르고 홀연히 떠나 오프를 즐기고 온 할아버지 셰프가 출근하자 다른 셰프가 전날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면서 덧붙였다.


ㅇㅇ 는 그 꼴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너라고 말 안 하더라. ㅇㅇ는 이 호텔에서 비밀을 털어놔도 되는 유일한 사람이야.”


아니  목에 칼이 들어왔을  신임을 버리지 않은 극적인 상황에서 도출된 나의 신뢰도는 아니었지만 새삼 뭔가 기분이  달랐다.


생각해 보면 남 얘기하는 걸 좋아하거나 분위기에 휩쓸려 이런저런 말을 해놓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사람들을 진중하게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간직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본 것 같아서,

나도 한 때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양념까지 쳐대며 별 얘기 다 해 놓고 이불 킥했던 경험자로서 나이 마흔을 앞두고 막중한 임무가 생긴 느낌이었다.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솔직히 남들 비밀 얘기가 뭐 대단한 내 관심사는 아니다손 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입이 무거운 사람은 되고 싶어졌다.


할아버지 셰프도 조용히 나에게 와서 말했다.


“ 나 쉴드 쳐줘서 고마워.”


———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들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가서 뭔가를 하면 선생님들에게서 종종 “ 가정교육 잘 받았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떤 행동이었는지는 자세히 기억 안 나지만 대충 어른들 앞으로 지나다니지 않는다던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던가, 앉았다 일어난 의자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나오는 뭐 그런 가벼운 행동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그냥 스쳐지나 보낸 칭찬이었다.


알고 지낸 지 벌써 4여 년이 된 준코 아주머니 댁에서 약 한 달여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는데 언젠가 한번 저녁식사를 하면서 아주머니, 아저씨께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 너랑 알고 지낸 지 4년이 됐지만 요새 같이 생활하면서 더욱 느끼게 된 건데 너는 정말 가정교육을 잘 받은 거 같아. “


사실 이유를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칭찬에 목마른 사람같이 보일 거 같아서 자세하게 물어보지는 못했으나 내심 기분이 좋더라?


연락처를 주고받는 지인, 스쳐 지나가는 그냥 사람이 되는 인연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겨서 그런지 어쨌든 뭔가 그 사람을 설명하게 되는 어떤 형용사들이 특징적인 사람들은 확실히 눈에 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들이 하루아침에 건설되는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알기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가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언제부턴가 참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나이 서른을 훌쩍 넘어서 듣게 된 가정교육에 대한 칭찬은 나의 무질서해 보이는 인생일 지라도 뿌리의 단단함을 확인시켜주는 느낌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홀로 힘겹게 우리를 키우시며 늘 부족하다 여기시는 어머니에게 안도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듣기 좋았다.


준코 아주머니의 딸이 일본에서 코로나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이 되었다. 누구보다 항상 내 얘기를 소중하게 들어주시는 아주머니 셔서 크리스마스 겸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3년 만에 돌아오는 아주머니의 딸을 위해 welcome back 풍선을 만들어서 오랜만에 완전체 가족 멤버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 보내시라고 영화관 바우처와 함께 선물로 드렸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선물에 아주머니께서 고맙다고 문자를 남기셨다.


“You are a very thoughtful person. Your mum would be so proud of you because she did a great job to raise you to who you are.”

(너는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 너희 어머니께서 키우신 대로 이렇게 잘 자란 너를 정말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뭐 대충 이런 뜻일 듯.)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불혹을 앞두고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는 체념해야 했지만 ‘올바른 가정에서 자란 티’는 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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