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Dec 16. 2021

Family도 못쓰던 애가 호주에서 대학교를 졸업했다.

코시국의 졸업식

작년 이맘때였다.

다사다난했던 호주 대학교 생활의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낸 후, 졸업식을 앞두고 코로나로 인해 몸 사리는 호주 퀸즐랜드 주정부의 지침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학교 측에서는 졸업식을 계획했다 연기하기를 반복했고 졸업식 자체가 불투명해지자 졸업사진이라도 먼저 찍어 놓으라고 메일이 왔다.


그리고 해가 바뀐 뒤, 여차 저차 하여 인원수 제한으로 인해 학과별로 나뉘어서 졸업식을 진행하였다. 국경은 여전히 봉쇄된 채로... 내가 공부한 학과 기준, 이곳 국민들이 내는 등록금의 3배 가까이 되는 학비를 내고도 가족들에게 외국 대학교 졸업식 구경은커녕, 함께한 사진 한 장 없는 졸업식을 가졌다.


요즘 우리나라 졸업식은 많이 간소해졌고 참석하는 사람들도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고 하던데 오늘은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한 뒤 단상으로 불러내어 가슴 벅찬 졸업의 순간을 기록하여 준 이곳의 졸업식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졌다.




중 1 때, 첫 영어 시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Family를 제대로 쓰지 못해 점수를 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문제만 틀렸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내가 Family 도 쓰지 못했다는 충격을 꽤나 컸었나 보다. 그 충격이 영어는 내가 잘할 수 있는 학문은 아니라는 첫인상을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중3 때, 같은 반에 미국에서 조기유학을 하다 온 남학우가 있었다. 영어시간마다 그 친구는 영어 선생님의 인간 스피커가 되었고 영어 시간 후에 오는 쉬는 시간이면 애들이 그 친구 자리에 모여 영단어를 읽어 보라고 하며 ‘우와, 우와’ 할 정도로 발음이 기가 막혔었지.

언젠가 한 번, 하필이면 버터를 입안 가득 머금은 그 친구 다음에 나에게 지문을 읽게 해 엄청 굴욕적이었던 기억도 있다.  


그때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감히 영어권 나라에서 영어로 수업을 듣고 팀 과제를 하고, 영어로 수십 명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영어로 최소 2000자 이상의 과제들을 수행하며 영어로 시험을 보고 호주 대학교의 학위를 따게 될 줄이야…




장엄한 음악이 포문을 열자 총장님을 비롯한 학과 교수진들이 가운을 입고 입장을 한다. 일단 나 같이 사연 있는 만학도라면 여기서부터 마음이 막 말랑말랑해지면서 아랫입술이 움찔움찔하기 시작한다. 교수진, 같은 해에 박사학위를 마친 조교진들까지 함께 입장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들의 한걸음 한걸음에 내 마음도 같이 벅차올라 밤을 새워도 좋을 지경이다.



개회사부터 Chancellor의 말씀, 그리고 초대 연사 졸업사까지 끝나면 축하 공연을 보고 졸업생들의 시간이 된다. 학과별로 알파벳 순으로 차례로 호명을 하는데 순서대로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졸업생들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이 되면 무대로 앞으로 모든 시선을 받으며 사뿐히 걸어 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총장님께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바로 앞에서 우리를 향하고 있는 카메라에 대고 세상 어색한 표정으로 총장님과 촬영을 하고 학사모 끝을 잡고 격식을 차려 인사를 한 후 자리로 돌아온다.


식전에 제일 먼저 불리는 학생 한 두 명을 예로 예행연습을 시켜주는데 그럼에도 인사를 안 하고 사진만 찍고 오는 사람, 인사만 하고 사진을 까먹고 내려오는 등의 이불킥 상황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하면, 단상을 내려오면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 춤을 추며 뿌듯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행히 나는 조신하게 인사하고 차분하게 사진까지 찍고 내려왔다. 걸어 내려오면서 이 모습을 어머니께서 보셨으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뿌듯해하셨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박사학위 수여자들 중 대표로 졸업생 연사의 순서까지 끝나면 처음 장내를 가득 메웠던 내 마음을 요동치는 음악이 다시 한번 울려 퍼지고 단상에 앉아있던 총장님을 비롯한 교수진들과 인사들이 퇴장을 하고 나면, 분위기와 어우러져 심금을 울리던 음악이 심장을 바운스하게 하는 음악으로 바뀌면서 졸업생들이 순서대로 퇴장을 하며 감개가 무량했던 졸업식은 끝이 난다. (안돼~끝나지 마요!  영원히 있게 해 줘요ㅜㅜ)

퇴장하는 졸업생들


우리 학교를 상징하는 색인 빨간색으로 가득한 졸업식장에 말 그대로 글로벌한 학생들과 함께 학사모를 쓰고 앉아있는, 그날의 주인공인 나를 보니 그동안에 스스로 벗어나지 못해서 더 괴로웠던 학벌에 대한 설움이 밤을 지새우고 손톱을 다 물어뜯어가며 해치웠던 과제들과 함께 떠올랐다.


‘한국에서 진작에 했으면 진취적인 학생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얼마나 재미있게 공부했을까.’ 하는 생각을 매 수업시간마다 했었지만, 조금 더 버거웠고 조금 더 돌아왔을 수는 있어도 이토록 절실하게 그리고 다양한 학생들과 내 몸에 체득되어 있는 방식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유학파(?)라는 포장을 얻게 된 지금이 또 ‘나의 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나이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교에 다니며 공부했던 친구에게 17년이 지나 지금 내 학교 생활의 고충을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나: “ 내일 오픈북 시험인데 여기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걱정이야.”

친구: “ 야, 오픈북이 인터넷이라고? 전공책 어깨 빠지게 들고 다니는 거 안 해도 됨?”


'나의 때'는 지금이 맞는 것 같다.




초대 연사가 말씀하셨다.


You did it! (당신은 해냈습니다!)

CongratuBLOODYlation!!  

(개축하해!!!)



학벌 세탁 끝. 다시 한번 끝. 진짜 끝.




작가의 이전글 외국 생활을 버티게 해 주는 필수요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