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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Dec 06. 2021

외국 생활을 버티게 해 주는 필수요소

귀가 시간 11시.

No kiss.

방문은 열어둘 것.


나에게 관심이 있던 남직원 한 명이 항상 나와 함께 출퇴근을 하고 같은 도시락 가방에, 서로의 짐을 챙겨주던 호주 아주머니께 나와의 데이트를 허락 맡아야 되는가 싶어 말씀을 드리자 아주머니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데이트 지침을 그 친구에서 일러 주셨다.


나의 외국 생활 통틀어 가장 안락하고 평안한 시기를 보냈을 때가 있었다. 바야흐로 2007년, 농장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슈퍼바이저 호주 아주머니랑 친해져서 아주머니 댁에서 지내면서 같이 일하러 다니던 3개월 정도의 기간이었다.  


장성한 자식들이 모두 출가를 하고 큰집에 부부 두 분이서 조용히 지내시다 어린 여자애 둘(나와 내 친구)이 들어오니 자식 같은 느낌이셨나 보다. 쉬는 날에는 같이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면서 로컬들의 삶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셨다.

같이 살게 된 시간을 계기로 아주머니 아저씨는 늘 " We are your Family in Australia." 고 해주시고 아주머니는 카드 끝마다 " Your Austalian mum."이라고 마무리를 해주신다.




당시에 나는 "Thank you."라는 말밖에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영어 초보자였지만 '언젠가는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영어실력을 갖추리라.' 하는 마음으로 그때까지 꼭 연을 이어가야 한다는 일념 하에 한국에 와서도 " Happy birthday.", "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뿐인 메시지 일지라도 꾸준히 연락을 하며 지냈었다.  

그렇게 가늘었지만 꾸준하게 연락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뉴질랜드에서 자리를 잡아 일하면서 휴가 계획을 세우다 지금이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물도 좀 먹었겠다, 이제는 내가 뭔가 보답을 할 수 있는 바로 그 시기!


그래서 휴가차 아주머니 아저씨랑 같이 여행을 가서 당시 근무하던 호텔 계열사 직원 할인을 받아 호텔비를 내가 모두 지불하고 그날 저녁, 외국생활 코찔찔이 시절에 아주머니 아저씨 께서 베풀어 주셨던 따뜻함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는 시간을 비로소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호텔 발코니에서 야경을 보며 아주머니랑 아저씨랑 엄청 울었었지. 나는 꾹꾹 참아왔던 마음을 비로소 표현할 수 있어서 기뻤고 아주머니 아저씨께서는 엄청 기특해해 주셨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나 몰라.


지금도 차로 한 시간 거리에 계신다. 생신이나 기념일은 물론, 쉬는 날 종종 가서 여유를 부리기도 하는데 내가 갈 때마다 지내는 방을 두분은 ‘네 방’이라고 지칭하시고 도착하면 항상 아저씨는 차를 점검해주시고 출발 하기전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신다. 마치 친정집 방문한 딸내미처럼.


# 내가 뉴질랜드에서 지내던 동네는 작은 마을인 탓에 주말마다 동네에 하나 있는 성당은 로컬 성당임에도 그 동네 가톨릭 신자인 한국인들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한국인 가족들이 있는데 대부분 그 지역에 오래 사시기도 하셨고 터줏대감 같은 분들이라 오래간만에 새로 온 젊은 임시비자 처자가 오니 뭔가 안쓰럽고 챙겨주고 싶으셨나 보다.

진수성찬 같은 집밥은 물론이고 따로 반찬도 챙겨주시고 오며 가며 우리 집에 들러 생사도 확인해 주셨다. 한국에서 어머니께서 오셔서 두 달 남짓 계셨던 적이 있었는데 계속 일을 하던 내가 없는 사이 언니들이 따로 또 같이 어머니를 모시고 산으로 들로 나들이도 같이 가주셨을 만큼 물심양면으로 챙겨 주셨던 분들이셨다.


차가 없던 당시의 나를 항상 태워주시면서 고마워하는 내게 " 나한테는 보답 안 해도 되니 나중에 자리 잡고 지금 너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렴."이라고 말씀하셨던 분들.. 나는 천사를 만났나 보다.


이번에 코로나로 인해 한국을 기약 없이 못 가게 되었던 기간, 뉴질랜드에 가서 그분들이라도 만나고 오면 한국 다녀온 것만큼의 마음의 안정이 될 것 같을 정도로 따뜻하고 포근한 기억을 주신 분들 덕분에 유독 추웠던 뉴질랜드에서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 이상하게 해외생활에서는 동갑친구와의 인연은 없었다.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넘어와서 첫 직장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이미 영주권도 받았고 관리자급의 직책을 갖고 있는 친구였는데 그동안에 회사에 한국인이 들어오지 않아서 오랜만에 들어온 한국인인 내가 너무 반가웠다고 했다. 게다가 동갑, 그래서 앞뒤 가리지 않고 친해지게 되었는데 신입이었던 내가 회사에 적응하기까지는 물론 부서를 옮길 때도 큰 도움이 되어준 친구였다.


그 회사를 떠나서도 인연을 계속되고 있는데 내가 학생일 때는 학생이라고, 풀타임으로 전환했을 때는 돈 벌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 항상 밥도 사주고 여기저기 데리고 가주면서 처음 만난 그때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거둬먹여주는 친구이다. 늘 받기만 하는 거 같아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준비를 하면 '왜 이런데다 돈쓰냐!’ 하면서 정작 받는 것은 쑥스러워하는 그녀, 응급실이란 말 한마디에 2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달려오겠다고 해주는 친구가 나에게 있다.




한국을 떠나왔을 때 목표한 바들을 생각해 보면 표면적으로 뭔가 흐트러지거나 잘못된 것 하나 없이 정도(正道)로 잘 가고 있는데 외로움에 지쳐서 인지, 코로나 때문인지 혹은 이른 갱년기가 왔는지 도무지 마음을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이 꽤 오래 흘렀다. 혼자라는 생각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도 티도 안 날 것 같은 미물 같은 삶을 한탄해하고 있다가도 언제 어느때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이런 인연들을 두고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가끔 미안해질 때도 있다.


독자님들의 지루함을 염려해 최대한 사연을 간추리느라 세세한 일들을 나열하지는 못했지만 호주 아주머니를 알고 지낸 10여 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보낸 3년여의 시간 동안, 동갑 친구를 만난 5년이란 기간 동안, 거론하고 싶은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갈 만큼 고마웠던 순간들이 빼곡하다. 그리고 언급한 분들 이외에도 생각 나는 크고 작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거...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건 나도 좋은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도 했던가...

문득 내 주변에 있는 그들의 존재 만으로 무너져 내리는 나일 지라도 괜찮을 수 있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다.


나의 외국 생활을 버티게 해 주는 필수요소는 '인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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