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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Nov 13. 2021

애엄마가 된 친구들에게 싱글 친구가 주는 육아팁

알아서들 너무 잘하고 있는 건 알지만

애들아,

우리 중학교 시절에 등교할 때마다 줄넘기했던 거 기억나지? 우리들 중 누구 하나 그거 열심히 했던 적이 없었잖아.

아침에 잠도 안 깼는데 줄넘기 100개를 할 정신이 어디 있었냐? 당번 선생님 눈 피해서 사람들 틈에 몰래 들어가거나 대충 시늉만 하고 들어가기 바빴었지.


근데 나 언젠가 한번 체육(교사)한테 걸렸었다! 그래서 나 운동장에서 엄청 맞았었어.

그 체육 유명했잖아. 학생부 선생님 중 한 명이었고 엄청 과격한 사람으로...


 그때 난생처음 머리 맞고 나뒹굴었잖아. 나뒹굴면서도 맞았지. 근데   생각할 때마다  억울해. 아침에 줄넘기     정도로 맞을 만큼 잘못한 일이야?

내가 학생부 불려 다닐 정도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고 그 사람이 우리 반 수업을 들어온 사람이 아니어서 마주칠 일도 없었으니 정말 줄넘기 하나 때문에 중학생 여자애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걷어찰 수 있는 거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팠던 기억보다 수치스러움만 가득한 거 같아. 나 그래도 반장이었고 선생님들과도 잘 지냈는데 너무 치욕적이고 부끄러워서 너무 비참했던 기억밖에 없어.


그거 알아? 그 일방적인 체육의 개인 분풀이 후에 남은 건 반성이 아니라 '반항'이더라. 나는 그때부터  이를 갈고 더욱 열심히 줄넘기를 하지 않았지. 학생인 내가 그 교사한테 뭘 할 수 있겠니. 지금 같이 신고를 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 행위들이 당치도 않은 '훈육'이라는 방패 속에 잔인한 '폭력'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는데...

그 사람은 하도 때린 애들이 많아서 기억도 못할 먼지 같은 일 중에 하나지만 이렇게 맞은 나만 기억하고 있는 거야. 20년이 지난 지금도 모욕감을 생생히 간직하면서...

그러니까 너무 나빠. 폭력은... 상처도 너무 깊이 오래 남고, 이유를 불문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도저히 갈래야 갈 수가 없는 방법이야.


내가 줄넘기를 안 하고 몰래 도망가는 그 쫄깃한 순간에 나를 불러 세워서 좋게 타이르는 정도만 했어도 나는 미안해서라도 줄넘기 '까짓것' 했었을 애였는데... 아마 우리 반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님들이라면 그러셨겠지. 그때는 그런 사람도 교사라고 선생님한테 맞았으니까 누군가 한테 말하기가 너무 창피했어. 내가 수업시간에 '차렷 경례'도 해야 하고 선생님들 심부름에 교무실도 드나들어야 하고 교내에서 오다가다 만나는 언니 친구들도 있는데 내가 다른 애들 등교하는 동안 운동장에서 뒹굴면서 맞았는데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녀...




근데 말이야. 나 우리 가족들한테도 말을 못 했어. 나는 내가 뭔가 잘못을 하면 가족들이 더 이상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사실 내가 그 정도로 잘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왠지 가족들 욕보인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겠더라.


있잖아. 나는 항상 모자란 사람이었어. 뭔가 더 잘해야 하고 '더 잘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애'였대.

어렸을 때의 나는 엄청 외향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애처럼 방방 거리고 다녔던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뭐라도 해보려고, 그래서 하나라도 더 칭찬받고 인정을 받고 싶어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던 거 같아. 그래서 좋은 얘기만 해야 하고 나 잘한 얘기, 가족들이 흥미로워하는 얘기만 해야 될 것 같았지. 그래서 좀 과장스럽게 얘기도 많이 했던 거 같아.


그런데 그렇게 삼십 년을 넘게 지내보니까 말이야... 지치더라. 이제 와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겠어. 잘하는 나만 나 같고 못하는 나를 나는 받아들이지를 못하겠어.

근데 생각보다 인생에서 우리가 칭찬받게 되는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잖아... 그러니까 점점 나는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야. 하루하루 지나고 나면 내가 가루가 되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요즘. 솔직히 한편으로는 그랬으면 좋겠어.


나름 한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되는 일도 많고, 사실 무언가 성공적으로 이뤄내는 것보다 실수를 하고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기도 하잖아.

나는 너희들이 너의 소중한 자식들에게 그런 순간에 무언가를 이뤄 냈을 때보다 더 따뜻하게 응원해주는 엄마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맞은 결론이라는 질책보다 그 과정과 결과를 보내온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으면 해. 너의 다정한 눈빛, 든든한 한마디가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성찰과 수정 보완의 시간으로 인도해 줄 수도 있을 거야.

그런 너의 단단한 격려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겪어도 벼랑 끝에서도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너도 여전히 누구보다 너의 자식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으면 해. 너희가 함께 하는 한순간 한순간이 서로를 만나기 전의 그 어떤 시간들보다 훨씬 의미 있는 시간들이라는 걸 표현해 주길 바라.


내가 나여도 사랑받기에 충분하다고 믿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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