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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Oct 02. 2021

장염 걸린 딸에게 피자를 사주는 엄마.

어머니의 예순여덟 번째 생신을 맞이하며

내가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지내는 동안 이따금씩 어머니께서 오셔서 한두 달쯤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면 나는 한동안 냉장고를 열기가 겁이 난다.

귀국 행 비행기를 타시기 일주일 전부터 홀로 남겨질 나를 위해 주방에서 말 그대로 지지고 볶고 각종 밑반찬을 만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별을 준비해야 했던 나는 결국 냉장고 문을 잡고 열지도 떠나지도 못한 채 주저앉아 울곤 했었다.


어머니의 음식은 참 맛있었다. 학교 가기 전날, 다음 날 도시락 반찬을 만드시는 어머니의 음식 냄새에 기어 나와 맛만 보겠다며 밥을 퍼서 먹는 나를 보고 언니가 그냥 지나치지 못해 갑자기 경쟁 모드로 전환, 둘이 다 먹어 치우는 바람에 도시락 메뉴는 급하게 변경되기 부지 기수였다.


어머니는 본인이 좋아하시는 ‘오징어 땅콩’을 어쩌다 ( 년에 한두  정도) 한 봉지씩 사 드셨던 걸 제외하고는 우리에게는 과자를 사주신 적이 없었다. 우리의 삼시 세끼와 모든 간식은 어머니의 손에서 이루어졌고 사실 간식도 핑거푸드 같은 음식이 아니라 잔치국수나 부침개 같은 걸 끼니 전에 출출하다고 하면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밥을 또 먹어. 안 먹으면 어머니께서 서운해하시기도 했지만 또 먹으면 또 맛있어… 그래서 나는 대식가가 되었다.


어머니의 밥은 맛있었지만 나는 외식을 하지 않는 우리의 밥상이 종종 지겨울 때가 있었다.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놀기 시작하면서 생일파티 등에서 맛보게 된 바깥세상의 위험한 맛들은 나를 현혹시켰고 늘 먹는 엄마의 손맛보다 나를 애태웠다. 그래서 뭐 먹고 싶냐고 저녁 메뉴를 물으시는 어머니의 질문에는 피자나 짜장면, 햄버거 등 같은 씨알도 안 먹힐 얘기들을 끈기 있게 말했었지만 어머니는 절대로 사주지 않으셨었다.


지금에 와서 내가 돈을 벌면서 드는 생각인데 재산과 수입이 대단히 넉넉한 편이 아닌 가계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시중에 파는 각종 음식들 특히 유난히 내가 좋아하는 피자의 가격이 참 만만치 않으셨리라 짐작된다. 심지어 몸에 좋은 음식들도 아니고… 당시에 나는 가볍게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아마 턱턱 사 주시지 못한 어머니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피자’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직접 피자를 만들어 주신 적이 있었다. 생일 선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질릴 때까지 피자를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고 집안에 피자 토핑과  소스를 한솥을 만들어 놓으시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학교 다녀와서 토핑을 정신없이 퍼먹고 있는 나에게 “ 이제 그만 좀 하지.” 라며 무서운 중저음으로 엄하게 말씀하신 뒤 피자는 더 이상 우리 집에서 종적을 감췄다.


인스턴트 음식은 엄마와 나 사이에서 인스턴트 한 존재가 아니었다.


맛있다고 하며 와구구 먹는 우리에게 음식을 해 주시는 게 생활의 낙이었던 어머니께서 나에게 인스턴트 음식을 사 주신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만들어주실 준비가 되어있는 어머니께서 굳이 외부에서의 값비싼 음식을 찾는 딸에게 별로 좋지도 않은 걸 알면서도 사 주실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머니 성격에서는 큰 결심이 필요하셨을 것이라 짐작된다.


한동안 내가 어머니 속을 썩일 때가 있었다. 어머니와 나의 대화가 줄어 들 수록 어머니의 한숨과 근심은 깊어졌고, 서로를 바라보던 시간들이 점점 없어지자 어머니는 등을 지고 돌아선 내 뒤에서 눈물을 훔치시는 날들이 많아졌다.

나와의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결심하신 어느 날, 뚱한 표정을 지으며 가기 싫은 발걸음을 하는 나를 어머니께서 말없이 이끌고 간 곳은 ‘미스터 피자’였다.  


먹고 싶은 것 골라봐.


어머니도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는 막막한 이 막내 딸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피자 집에서 꺼내신 어머니의 첫마디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무거움에 힘겹게 꺼내신 한마디라는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이 날이 어머니 인생에서 처음으로 피자 집에서 주문을 해보신 날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갑작스럽게 식생활이 불규칙적으로 바뀌게 되어서 인지 (현재 기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염이 걸린 적이 있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누워있는데 외출하고 돌아오시던 어머니께서 재료를 사 오시려고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셨다.  


그 와중에도 나는 치즈 크러스트 피자를 말했다. 당연히 어머니는 장염 걸린 애가 무슨 피자냐며 황당해하셨고


“ 그럼 아무거나. 피자 말고 먹고 싶은 거 없어. “


(뭐 이런 애가 다 있냐. 티비에서 많이 보던 전형적인 엄마 생각 안 하는 못된 애.)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는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어머니께서는 피자를 사 오셨다.

잔병치레가 많지 않던 내가 장염이라는 것이 걸리고 몸져누워있으니 맘 약해지신 어머니는 아닌 걸 아시면서도 뭐라도 먹이고 싶으신 마음에 피자를 사 오시고는 먼저 먹고 먹으라고 죽도 같이 주시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꼭꼭 씹어먹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이것저것 먹어보고 맛있었다는 얘기를 하면 어머니께서는 항상 요리법을 찾아보신다. 특히나 평소에 내가 잘 먹지 않던 음식들을 어디서 먹고 와서 맛있다고 하면 일주일 내에 밥상에는 그 반찬들이 새 음식을 먹일 반가운 엄마의 손맛을 타고 올라와 있다.  


내가 외국에 있는 지금도 어머니께서는 나의 식성 변화에 여전히 관심이 많으시다. 내가 호주에 와서 닭발이란 것을 인생에서 처음 먹어 보던 날 어머니께 맛있었다고 말씀드리니 언젠가 어머니께서 집에서 한번 해보시고는 다음에 오면 원 없이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호주가 이번 크리스마스 부터 보더를 리오픈 할 수도 있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내가 한국에 도착하는 날마다 항상 먹는 내 최애 저녁 메뉴가 있다.

엄마의 김치찌개와 오징어 볶음, 그리고 계란말이.


뜨거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나를 위해 갓 지은 밥솥에서 내 밥을 먼저 퍼 놓으시는 엄마의 손길이 유난히 그리운 오늘이다.


엄마, 부디 행복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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