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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Sep 08. 2021

엄마, 우리 여행 갈까?

'이러는 게 맞아?'


다른 사람들도 평소에 죽음에 대해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오늘을 그토록 원했던 어제 죽은 이에게 너무 송구스럽지만 이렇게 끝을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과연 정상인 건가 싶을 정도로 삶에 대해서 굉장히 비관적인 태도를 가져온 지 꽤 된 것 같다.  


스스로의 삶에 만족감과 대견함을 느끼고 계신 한국에 계신 지인분이 수술을 하셔서 통화를 하게 되었다. 몸이 안 좋으니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시는 와중에 얼마 전에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응급실행을 한 내가 생각이 나서 많이 안쓰러우셨다고 하셨다. 늘 자신의 방식으로 격려와 응원을 해주시는 분이었는데 진짜 수술을 하신 분이 수술 보류 상태인 나를 생각해 주셨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다.  


“주급이 얼마나 되니?”


갑자기 들어온 연봉 조사에 순간 당황해서 고민할 새도 없이 답을 해버렸다.

나이를 잊은 채 이제 대학교를 갓 졸업했으니 사회초년생 벌이인 데다 영주권 때문에 원하는 일이 아닌 영주권에 유리한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이를 잊을 수 없는 내가 그분의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하고 답답한 상황이었나 보다.


“한국 들어오면 일자리랑 그 월급은 줄테니까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얘기를 들어보니 그 주신다는 일자리는 은퇴하신 그분의 개인 비서를 하라는 것이었다.


주위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똥구녕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만 있는 것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일이다. 맛있는 것도 가격표 안 보고 사줄 수 있고 격려금도 위로금도 턱턱 주는 그들의 여유로운 삶이 종종 빡빡한 내 일상에 숨통이 되어 줄 때도 분명 있다.


근데 이번은 좀 달랐다. 시기도 몹시 안 좋았고 방법도 나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

물론 그분의 진심은 나를 무시하고 여전히 하찮다고 말하고자 함인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나는 너무 유약하고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지난 시간들이 너무 허무해졌다. 한국에서의 열등감과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홀로 한국까지 떠나와 학벌 세탁이고 외화벌이고 뭐라고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는 내 시간들이 한순간에 너무 무의미해졌다. (비서라는 직업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이 전공도, 경력도 전혀 상관없는 퇴직한 분의 개인 비서를 하기 위해 하루아침에 내팽겨쳐질 할 만한 그런 일들로 치부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심지어 지금 딱히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것도 아닌 필라테스 하고 중국어 공부하시고 책 읽는 평안한 노후를 보내고 계신 분의 비서를 하는 일이 정말 여기서 이렇게 지내는 것보다 낫다는 걸까? 그렇게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지금보다는 나의 미래에 정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고 말씀을 해 주신 걸까?


나는 정말 ‘또’ 잘못 오고 있었던 걸까…


한국에서의 뭘 해도 못 미더웠던 나의 입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10년 가까이 망망대해에서 헤엄치며 고군분투했지만 여전히 별 볼일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평소 직언을 하시는 그분을 통해 이런저런 팩폭을 당하니 특별한 말이 없는 다른 가족들에게도 아무리 벗어나고자 해 봤자 나는 결국 아픈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자신이 없다.



종종 삶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은 유명인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죽을  죽더라고  젊음에,  재산을 가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1년이든 10년이든 자유롭게 지내보기라하지…’라고  알지도 못하면서 섣부르게 혼자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뭘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 기사들과 현실 자각을 통해 그려본 나의 통장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만은 너무 알겠다. 내가 지금 가진 전재산, 재산이라 하기에도 비루한 숫자라 어차피 남겨봐야 누구의 삶에 대단한 도움이 되어주지 못할 거라면 그냥 내가 다 써버리고 끝내자 라는 마음이 들었다.


요 근래 산란한 마음에 우는 소리밖에 안 할 것 같아 한동안 연락을 드문드문했던 어머니께 문자를 드렸다.


“엄마, 코로나 끝나면 내 전 재산 가지고 세계 여행이나 같이 갈까?”

다른 할머니들처럼 3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온 육아에, 또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에... 이제야 좀 제대로 돈 벌기 시작하나보다 했던 얘는 또 왜 이러냐며 말 돌리실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답을 주셨다.


“ 그럴까…?”


엄마도 많이 지치셨나 보다.


내일 아침에 또 울면서 일어나더라도 일을 가야 하는 이유가 일단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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