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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l 18. 2021

아니, 도대체 언제 적 북한 타령이야.

한국 떠나니 애국자.

지인들의 지인들까지 모인 낯선 사람들이 제법 있는 술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 아시안은 나와 태국 사람 한 명이었고 나머지는 영어권 내지는 유럽 사람들이었다.

외국인들과의 자리에서 낯선 사람들이 친해지려고 처음에 말을 건넬 때는 주로 말을 걸고자 하는 사람의 나라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얘기들로 물꼬를 연다.

내가 점점 그 자리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날 처음 본 사람이 같이 있던 태국 여자애에게 말을 걸기 위해 죄다 태국 내의 야한 게이 바나 스트립 바 이름들을 거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내가 그 여자애였으면 자신의 나라를 떠올리며 할 수 있는 얘기들이 그런 류들 뿐이라는 것에 불쾌했을 텐데 그 애는 별 신경이 안 쓰이는지 같이 신나서 얘기하더라고. ‘저 사람은 저게 괜찮나 보다.’ 하고 그냥 나에게는 말을 걸지 않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의 레이더에 내가 걸리고 말았다.




내가 집 밖을 나가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던 해외 생활 beginner 때부터 꿈속의 내 일상이 더 이상 한국이 아닌 지금까지 허구한 날 듣고 있는 내가 싫어하는 현지인들, 외국인들의 농담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North Korea or South Korea?”라는 소리.


“Of course, South Korea.”

내가 외국생활 초짜일 때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현지 생활에 적응을 해가던 언제부턴가 이 질문이 영 달갑지 않기 시작했다.


분단국가 출신인 사람에게 어느 쪽인지 묻는 게 왜 나는 기분이 나쁜 걸까?

처음에는 ‘아, 이 사람이 한국에 대해서 좀 아는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현지에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인이라는 대답에 남북한 인지 묻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당연히 내가 South 일거라는 걸 알면서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지라 그걸 농담이랍시고 촐랑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조부모님은 북한에서 태어나신 분들이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주로 유쾌한 옛날 얘기들을 해 주셨었는데 나는 두 분의 명랑한 사연보다 그 사연을 얘기해주실 때마다 꺼내 보시던 낡은 사진과 편지들을 하염없이 어루만지시던 그 손길과 눈빛을 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들이 남한으로 오시기 위해 무엇을 걸고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평생에 걸쳐 가슴속에 묻어둔 그리움의 깊이를 내가 감히 가늠하는 게 무서울 정도로 누군가에게는 크나큰 비극이라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다.


첫 우주 관광객이 탄생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지구 한편에서는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주제넘게 내가 설명할 정도가 아니겠지만,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첩보영화 정도라 그저 죄송) 아주 은밀하고 험난한 탈북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있는데 그 역사를, 한국을, 한국인인 나를 얼마나 한없이 가볍고 우습게 봤으면 그렇게 경망스럽게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일터에서, 학교에서 만난 현지 친구들이나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은 북한에 대한 소식을 접하거나 개인적인 궁금증을 나에게 물어볼 때 진중하고 경청하는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질의를 해와 오히려 나의 비루한 지식과 영어실력을 한탄하게 만들기도 한다.  


종종 한국인들 중에 장난 삼아 ” North Korea.”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을 본다.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본인을 북한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을 농담으로 하는 사람들은 모두 현지인들과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하여 친구를 만들 만큼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본인의 영어 실력으로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얘기가 북한 드립 정도의 역량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I’m North Korean.”

“Really?”

”No. I’m joking.”


이 단 두 마디에 끝날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경험상, 영어실력이 현지인들과의 친목 도모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정도라면 저런 의미 없는 질문에 굳이 시간을 소모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주제가 웃긴 것도 아니고, 참신한 것도 아니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너무 별로잖아.


‘잘못되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사람들은 정말 내가 한국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가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적어도 한국의 또 북한의 사연이 다른 나라의 유명한 게이바나 스트립바가 거론되는 수준으로 가볍게 치부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설령, (내 경험에는 없었지만) 현지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영어 실력의 한국인이 공기보다도 가볍게 농담 삼아 본인을 북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면 여전히 같은 이유에서 나는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 자체에 언짢아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100미터 전부터 이미 아시안인 게 티가 나고, 발음, 행동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인임을 걷어 낼 수가 없는 나에게 나의 본적을 궁금해하는 것까지는 나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살아생전에 북한에 두고 오신 가족들을 생의 마지막 날까지 사무치게 그리워하신 북한 태생인 조부모님을 둔 사람이라는 걸 차치하고서 라도, 분단국가의 역사 속에 경박하고 방정맞게 주고받을 이야깃거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인이라는 나의 말에 예외 없이 북한 사람이냐고 낄낄거리며 묻는, 앞으로도 계속 모르는 사람이고 싶은 그에게 말했다.


It’s NOT fu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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