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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Oct 14. 2021

발 없는 남의 말이 나에게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 친한 선배, 모르는 척하고 싶은 상사, 적당히 아는 지인, 단골 가게 사장님 등등 세분화하면 끝도 없는 이 생활 속 관계들에게 나도 모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때그때마다 다른 화법들이 자판기처럼 나왔던 것 같다.


내가 약 8년 동안 영어권 나라에서 지내 본 경험으로는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대화가 아닌 이상 대화체에 큰 변화는 한국어에 비해 덜하다고 생각된다. 영어에도 나름 격식 차린 표현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대단히 예의를 갖췄다고 할 만큼 차이나는 표현들을 흔히 듣게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버스정류장에서 길 물어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 버스 타셔야 해요.”라고 하지, “너 저 버스 타야 돼.”라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여기서는 초면이든 구면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똑같이 누구에게나 “ You should take that bus.” 라고 말하는 것에서 전혀 눈살을 찌푸릴 만한 것이 없다.


성당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미사 시간에 기도문이나 신부님의 강론에 평상시에 내가 쓰지 않는 용어들이 사용되기도 하고 낯선 표현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같은 기도문이라고 해도 딱히 일상 대화와의 차이점이 느껴질 만한 것들이 많이 없다.  


그래서 종종 미사 시간에 듣는 말씀이나 성가 구절들이 종교적인 느낌이 있는 한국 성가나 성서 말씀보다 친근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마치 나를 잘 아는, 나를 생각해 주는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 같아서 호주인들의 평화로운 미사 시간에 혼자 사연 있는 사람처럼 눈물을 훔칠 때도 있다.


For the moon and the stars will be gone like the night, and the sun will be shining on you.

(달과 별들이 밤처럼 사라지고 나면 태양이 너를 비출 거야.)

                   -Catholic hymn ‘Will you love me’ 중에서-


I will be your light. Come and rest in me.

(내가 너의 빛이 되어 줄게. 내 안에 와서 쉬어.)

                        -Catholic hymn ‘You are mine.’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성가들.

대단한 영어실력이 아니어도, 특별한 용어들 없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법들과 진배없어서 방심한 틈에 화살처럼 마음에 꽂혀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성가도 성가지만, 신부님의 말씀 역시 다정하게 눈물 버튼을 공격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가족들이 놀러 와서 다 같이 미사를 갔었을 때였다.

(미사 시간 중 '영성체 시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영성체로 자격을 얻은 신자들을 이 시간에 앞으로 나가서 성체를 뜻하는 밀떡을 받아 모시고 첫 영성체를 받지 못한 아이들은 이 시간에 손을 합장하고 나가면 신부님께서 머리에 손을 얹고 성체 대신 축복기도를 해 주시기도 한다. )

어린 조카가 영성체 시간에 어른들 틈에 껴서 앞으로 나아가서 순서가 되자 신부님은 예외 없이 이 작은 아이의 작은 머리에 손을 얹고 나지막이 말씀해 주셨다.


I listen to you. I care about you. I am with you.


꼬맹이 조카는 머리 노랗고 눈 파란 신부님의 터치에 잠시 긴장했다가 이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엄마 따라 총총거리면서 돌아섰지만 별생각 없이 뒤에 서있던 나는 순간 한걸음 떼기가 무거울 정도로 커다란 울림을 받았다. 마치 나에게 해주신 말들 인냥.

아주 평범하고 흔한 말이었지만 가족들이 오기 전까지 혼자였던, 돌아가고 나면 다시 혼자가 될 나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내가 너무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나 보다.


남에게 가던 발 없는 말이 나에게 왔다.


나는 너에게 귀 기울이고 있고, 너를 아끼고,

나는 너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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