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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l 31. 2021

내 삶에서의 20초의 용기

해외 취업 인터뷰 생생 후기

                   “You know, sometimes all you need is 20 seconds of insane courage.

                            Just, literally 20 seconds of just embarrassing bravery.

                                And I promise you something great will come of it.”

(있잖아, 때때로 미친 척하고 20초의 용기를 낼 필요가 있어. 딱 20초만 부끄러우면 돼. 그럼 장담하는데 정말 멋진 일이 펼쳐질 거야.)


영화 'We bought a Zoo' 에서 엄마를 잃은 충격과 사춘기가 겹쳐 사이가 멀어진 아들과 화해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맷 데이먼)가 아들(콜린 포드) 에게 해주는 대사이다. 영화에서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에 대한 고민을 말하는 아들에게 해주는 조언으로 나오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일반적인 치아의 개수를 제대로 장착한 사람이 드문 내 환경에서 ‘안 죽었으니 연애하고 싶다’는 마인드를 지닌 할아버지들과 6개월 이상을 지내고 나니 연애에 대한 기대는 이미 메마른 지 오래이고, 내 삶에 있어서 미친 척 20초의 용기가 필요했던 시간을 생각하게 되었다.


용기와 도전으로 점철된 해외 생활 중에 가장 용기가 필요한 순간은 단연코 구직 생활이다. 외국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외국인이라는 입장 자체가 주는 불안정함이 있다. 비자 상태나 언어구사 능력 등 회사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있고, 안해도 되는 '고려'의 원인제공을 한 것에 더해 문화 차이와 구직, 즉 ’ 일자리 구함’ 상태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함은 이력서를 들고 서 있는 나를 한껏 주눅 들게 만든다. 그에 반해 면접관들은 언제나 위풍당당하고 콧대가 하늘을 찌르지 아주…


브리즈번 시티 한복판에 있는 세계적인 대형 체인 5성급 호텔의 면접을 보던 날이었다. 브리즈번이 있는 퀸즐랜드 주에 최초 입점되는 브랜드로 건물을 새로 지어 모든 게 새로 시작되는, 호텔리어로써 탐나는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인수나 합병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 흡수되는 직원들 없이 각 부서마다 모든 직원들을 새로 구인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공개 채용이 진행되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온 인터뷰 안내


대망의 Recruitment day가 시작되고 내가 배정받은 시간에 호텔로 가보니 이미 약 40~50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뾰족구두에 칼 단발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HR직원의 안내에 따라 면접이 진행되는 곳으로 올라가니 아직 공사가 완공되지 않은 건물 외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 곳에서는 DJ가 안 그래도 정신 못 차리는 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방방 거리는 음악을 틀어대고 있었고, 입구에서는 바텐더가 음료를 만들고, 한쪽에서는 요가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이럴 거면 business 복장은 왜 하고 오라고 한 거야?’라고 의문을 가지는 순간, General manager와 HR manager 가 인사를 하며 설명을 해주었다. Eat well, Move well, Sleep well 등 호텔의 슬로건에 맞게 Recruitment day를 마련한 것. '역시 대기업은 다르구나…'를 느끼면서 바텐더의 권유로 기호에 맞는 Fresh juice를 츄릅 츄릅 마시며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상큼한 주스가 곧 나에게 가져다 줄 고난과 역경은 상상도 못 한 채...)


내 순서가 되고 면접관을 따라 인터뷰 룸에 들어서니 면접관들이 각자 면접자들과 카페처럼 자유로운 방향의 낮은 테이블에 앉아 편하게 얘기하듯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면접도 시작되었고 면접관의 질문이 더해질수록 내가 경쟁자들과 함께 있던 엘리베이터에서도 달달 외우고 있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들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끼며 점점 머릿속은 하얘져 갔다.

그전에 경험한 인터뷰에서 그랬듯 내가 준비한 것들은 지원동기나 이 회사를 위한 나의 역할, 나의 장점과 단점 등이었다. 지원 동기의 ㅈ만 나오면 읊어댈 준비를 한 나에게 들려온 면접관의 첫 질문


 “How was your fresh juice?”

 (망했다.)


 “What kind of fresh juice did you have?”

(님, 오늘 내가 준비한 거 질문 안 해주실 거죠?)


“Why did you have that juice?”

(잘못했어요. 다시는 주스 안 마실게요. 제발 사람답게 여기서 나가게 해 주세요 흐헝)


그리고 이어진 질문들 역시 손만 뻗으면 닿는 면접관과의 거리에서 나를 점점 면접장 문밖으로, 호텔밖으로 밀어내어 멀어지게 했다. 내가 입으로 말했는지 코로 말했는지 모르게 끝나고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

내가 그날 받은 질문 중에 제일 평범한 질문.


“Do you have any question before you go?”


없다고 하고 당장 얼굴 가리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어차피 망한 거 피드백은 없을 테니 이유나 알자는 마음으로 물었다.


“Is there any reason that you wouldn’t hire me during this interview?”

 (혹시 인터뷰 동안 저를 채용하지 않을 만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 질문을 면접관에게 한 것이 나의 20초의 용기였다.  


일 시작은 언제부터 하나요? 몇 명을 채용하나요? 등등의 일반적인 질문이 아닌 이미 멘털이 털릴 대로 털린 나를 본 면접관의 소감을 묻는 것이 내가 마지막 발버둥으로 정신줄을 붙잡은 채 낸 20초의 용기였다.


횡설수설에 동문서답의 향연을 펼쳐놓고 “ 나 어땠어?”를 면전에다 묻는 변방의 작은 아시아 출신의 패기에 면접관은 살짝 당황한 듯 보였으나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Never expected this question. My answer is No. You did well. I like you. I would love to see you at final interview.”


덕분에 홀가분하게 기다리며 마음놓고 인터뷰 내용을 곱씹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에 두 번씩, 일주일간 진행된 첫 번째 인터뷰에서 선발되어 파이널 인터뷰를 거쳐, 나는 그 호텔의 오픈 멤버가 되어 2년간 함께 했다.

당시 인터뷰어는 나의 직속 매니저였다. 후에 직접 들은 바로는 그 자리에서 그 질문을 한 것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매니저가 말해주었다.

오리엔테에션 때 받은 사원증과 소정의 환영품




영화는 아내를 잃었지만 동정받기를 원하지 않는 가장의 삶의 무게부터, 사이가 틀어진 아들과 아버지가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 귀여움을 한도 초과한 막내딸과 전형적인 영어식 유머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볼 때마다 나의 삶의 이곳저곳을 생각하게 한다. 멧 데이먼, 스칼렛 요한슨, 엘르 패닝 등 블록버스터급 배우들의 평온한 연기를 볼 수 있어 더욱 좋은 잔잔한 힐링 영화…라고 하긴엔 볼 때마다 너무 오열을 해 나는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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