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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Aug 05. 2021

이젠 나도 아프다고 말해도 되나요?

말 그대로 누군가 내 숨통을 막은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새털 같이 많은 여느 날처럼 평범하게 보내고 평범하게 잠이 든, 무엇하나 이상할 게 없는 날이었는데 이번에는 가슴에 압통까지 느껴졌다. 뜨거운 돌덩이가 가슴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다. 여지없이 입술도 바짝바짝 마르고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에서 든 생각은 ‘ 나 이대로 죽는구나…’였다.

그러고 나서 보니 내 마지막 모습이 발견될 곳이라고 하기에는 방도 너무 정리가 안되어있고 내 마지막 모습이 될 거라고 하기엔 너무 꾀죄죄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참 나지...) 그 와중에 나의 정돈된 마지막 모습을 위해 어지러워서 숙이지도 못하는 고개를 이끌고 샤워를 하고 나와 잠옷을 갈아입고 방을 정리를 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아침에 깨어보니 나는 접으려다만 구겨진 옷을 손에 쥔 채 침대에 걸쳐 엎드려 있었다.  

여전히 가슴에 뜨거운 돌덩이와 압통은 그대로였다. 무서운 마음에 회사에 늦는다고 말을 하고 급하게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검사를 더 해봐야 알 것 같지만 ‘공황장애’의 가능성을 말해주었다.


그러고 병원을 나서는데 이런 적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친구들이랑 밥을 먹다가 쓰러진 적이 있었다. 순두부찌개였다. 내 앞에는 철판이 놓여 있었는데 순두부를 한입 먹고 그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명치 부근에 다다름을 느끼면서 말 그대로 코 박고 쓰러져서 한동안 얼굴에 화상을 입을 채로 지냈어야 했다. 당시에는 날도 너무 더웠고 끼니를 잘 챙겨 먹지 않았을 때여서 ‘더위 먹었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또 그냥저냥 지내다가 휴가차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다. 비행기 한두 번 타는 것도 아닌데 그날 비행기 착륙할 때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계속 숨을 쉬는데 들어오는 공기가 없는 느낌.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롤러코스터 최고 지점에서 하강만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비행기가 멈추고 다른 승객들이 하차를 하는 데도 나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결국 승무원의 도움으로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몇 해 전,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였다.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는 가톨릭에서는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이니 당연히 성당 안 좌석들은 신자들로 가득 차 있고 서서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로도 이미 성당은 안팎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외국에서 참석하는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에 의의를 두고 일행은 없었지만 일찍이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왜 이렇게 덥지..?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한참 미사가 진행되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더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겉옷을 벗었는데도 진정되지 않았다. 한 여름에 맞이 한 크리스마스 자정 미사라 얇게 걸친 겉옷은 애초에 원인이 아니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빼곡히 자리한 사람들을 어떻게 뚫고 나왔는지는 자세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구부정하게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오는 나를 놀란 눈으로 보며 길을 내어주어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중 가장 순탄했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난간을 잡고 숨을 쉬었다. 뒤에서 서서 미사를 드리고 있던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다독여주는 소리를 들으며 잠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독여 주는 손길에 다시 깨어 집으로 왔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허리도 제대로 피지도 못하며 혼자 비틀 거리며 걸어왔다.

그 뒤로 나는 어떤 좌석에 앉을 때 가운데에 잘 앉지를 못한다. 아는 일행들 사이는 그나마 덜한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앉았다가 비슷한 경험을 한 뒤로 늘 끝자리에 앉는다.




내가 마음이 답답한 티를 내면 나를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약해서 그렇단다. 나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다들 그렇게 처한 상황들 극복해 가며 살아간다고… 그게 인생이란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 하는 사람들도 대상포진에, 위경련에, 장염에 뭐 다들 스트레스로 인한 병들을 다 한 번씩 겪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두고 나 아프다고 말하기에는 나는 너무 멀쩡해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되뇌었다.


아직 나는 괜찮은 정도 인가 봐…


그리고 얼마 전에 일하다 말고 응급실에 다녀왔다.

이제는 그냥 나약한 사람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이제는 내가 아프다고 하면 믿어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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