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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Sep 15. 2021

살생을 했다.

스케일이 다른 호주 거미와의 한바탕.



알아. 좋은 일 많이 한다는 거…

하지만 나한테 뛰어 들 건지 안 뛰어 들 건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보고 있는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는 너를 내 곁에 두고는 도저히 불을 끌 수 없었어.


알아, 생김새 가지고 평가하면 안 된다는 거…

그렇지만 너는 너무 기괴하고 위협적으로 생겼어. 그냥 내 손톱 정도의 크기였다면 너의 명을 다 할 수 있도록 알량한 자비를 베풀었을지도 몰라.

너도 알잖아. 너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는 걸. 콩알만한 간을 가진 나란 인간은 그 흔한 ‘꺅’ 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너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담대함을 가진 인간이라도 신기해서라도 걸음을 멈춰 섰을 거야.


미안해.

대신 해결해 줄 이가 없는 내가 너의 목숨을 내 손으로 마무리 짓는 과정이 너무 아름답지 않았어.


그렇지만 나도 그러고 싶었던 것은 절대 아니야. 우리가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이기도 했지만 화장실에서 대치한 우리는 잠시 탐색전을 가지고 나는 주위를 둘러봤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덜 잔혹하게 따뜻한 물에 네가 안락하게 숨을 거둬주길 진심으로 바랬어. 그럼 내가 경건하게 빳빳한 종이에 너를 담아 네가 있던 자연으로 돌려보내주려고 했었단 말이야.


나에게만 따뜻한 물이 너에게 안락한 죽음을 선사할 것이라는 건 나의 무지였나 봐.

시간이 지나 너는 다시 살아나 쓰레기통에서 힘겹게 기어 나와 바닥에 서서 또다시 나와 대면하게 되었지.

그래도 시신 훼손은 없이 너를 보내주고 싶었는데너는 마지막 힘을 다해 다시 살아보려고 을 뿐인

나는 나의 공포심에 휩싸여 너의 장기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각선미를 뽐내던 멀쩡한 팔지(八肢)를 중구난방으로 헤집어 놨지.

이제는 버둥거릴 힘도 남아있지 않은 너를… 어차피 얼마 못 가 쓰러져 버릴 수도 있는 너를…


너의 친구도 그랬어.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을 원샷 원킬이라는 스프레이에 조용히 숨을 거두길 바랬었는데 너무 고통스러워하면서 정신없이 날뛰었지. 그와 동시에 나도 날뛰면서 닥치는 대로 뭔가를 해야 했어.  


그렇게 여기저기 뜯긴  마지막을 맞이한 너희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


새벽에 화장실에 불을 켜고 들어갔을 때 겨우 쓰레기통을 빠져나와 비틀거리며 서있는 너는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어.

독한 스프레이에 방향도 잃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너의 친구가 꼭 나의 마음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았어.


그렇게 힘겹게 다시 일어섰는데 그렇게 힘들다고 몸부림쳤는데 결국 너희에게 내려진 것은 잔인하고 가혹한 매질 이라는 현실이, 그것이 바로 한낱 미물에 불과한 내 손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있어야 할까 봐. 뭔가를 하면 할수록 더해지는 이 보이지 않은 무자비한 공격들에게 더 이상 맞서기가 더 무서워졌어. 내가 나를 가누지 못할 만큼 지쳐 있어도 어차피 계속 힘들 거라면, 정말 어디선가 나를 보고 나의 발버둥을 끝내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 뭘 더 바라고 청하지 않고 그냥 알아서 가만히 있겠다고… 그러니까 조용히 끝나게 둬도 된다고…


우리가 바랬던 건, 그냥 사람답게, 거미답게 사는 것이었는데 그게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과분한 욕심이었나 봐.

내가 주제넘게 너희의 생을 끝내버렸지만 나는 결코 그로 인한 어떠한 쾌감이나 안도를 느끼지 않았다는 것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을 뿐인데 내가 너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줄 수밖에 없는 것이 죽음까지 이르게 한 고통이라는 것이,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괴롭다.



그것 만큼은 꼭 알아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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