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호주에 있는 이유 2편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한국에 대한 나의 기억이 얼마큼 정확도가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내가 없는 사이 생긴 새벽 배송이라든가, 당일 배송이라든가. 각종 배달 앱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한국의 생활 편의 서비스는 날로 진화를 거듭하다 못해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호주의 생활 서비스는 ‘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지 당일 서비스, 당일 배송은 다음 세기에나 있을 법한 소리이다. 인터넷 설치하는 데만도 두 달이 넘게 걸렸으니… (설치하는데 문제가 있어서 지연된 것이긴 하지만 테크니션 세 번 만나는 것에 기다리는 시간이 나머지였으니 아무리 문제가 있었다 한들 한국이었으면 이 정도는 안 걸렸다고 장담.)
처음에 호주를 오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숨 고르기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서의 습관으로 퇴근 후 뭔가를 하려고 한다거나, 병원, 수리 등 각종 서비스 예약을 위해 시간적 여유 없이 연락을 하거나 한국에서처럼 일정한 속도에 맞춰 버스에 오르내리다가 여기 와서 그 흐트러짐은 물론 그 정도가 지나쳐 기사 아저씨와 스몰 톡 (Small talk)까지 하는 앞사람에 인내하지 않으면 화병 나서 다음 날 귀국행 티켓팅 할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지내다 보면 또 모든 일을 그렇게 숨 가쁘게 처리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오후 4~5시면 문을 닫는 나를 현혹하다 마는 바깥세상에 의지할 필요 없이 나의 시간을 갖거나,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친구들과의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 있다. 또 각종 예약들에 기본적으로 2주 기다림에 적응되면 모든 일을 미리미리 해야 하다 보니 나름 삶이 계획성 있어진다. 그리고 버스 기사 아저씨가 출발할 생각은 안 하고 다른 사람이랑 잡담만 하고 있는 거 같아도 도착지에 가보면 또 예정시간에 도착해 있어서 고개 삐죽삐죽 내밀고 시간 체크하던 내가 오히려 조급증 환자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호주는 잡담 시간까지 계산해서 예정시간을 책정해 놓나 봐…)
그렇게 지내다가 한국에 가면 한국이 너무 편할 줄 알았다.
휴가 차 한국에 방문했을 때였다.
백화점에서 산 물건에 하자가 있어서 교환을 하러 갔는데 우리 어머니보다 조금 어리신 듯한 분이 나와 내가 교환하려던 바지에까지 극존칭을 하며 사과를 하고 쩔쩔매는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한 적이 있었다. 분명히 나도 알던 모습이었을 텐데 너무 낯설게 느껴졌었다. 너무 극진한 대접에 나의 목적이 고작 ‘바지 교환’이라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새로 산 바지가 문제가 있었던 건 그 점원 분의 잘못이 아닌데 교환하는 거 도와주시면 될 뿐인데 친절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과분했다.
그에 비하면 호주 백화점은 매장마다 사람이 붙어 있지도 않는다. 매장 여러 군데에 한 두 명씩 배치되어 있는 모양새 이기 때문에 점원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고객이 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뭐 대단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솔직히 그 직원들의 전문성도 한국 백화점 직원들에 비하면 많은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성의껏 하는 정도는 보이기 때문에 더는 바라지도 않는다 랄까…
고객이라고 해서 “아이고 우리 고객님” 하는 친절 말고 내가 사는 물건에 대해 “이거 나도 하나 가지고 있어. 너무 예뻐.” 하고 한 마디 거드는 정도, “ 이거 다른 사이즈 있나요?.” 했을 때 반가운 기색으로 창고 찾아보고 컴퓨터 두들겨 보고 ‘있다, 없다’ 말해주는 정도면 더할 나위 없다는 것을 여기 와서 깨달았다.
백화점에 나보다 연세가 지긋하신 직원 분들… 그분들의 삶이 너무 행복해서 그 행복이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나오는 게 나에게까지 온 과한 친절이라면 나는 기꺼이 나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팍팍한 그분들의 삶을 감추기 위한 친절이라면 나는 너무 슬퍼진다.
호주에서 이전에 살았던 동네에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에 뜨개질로 이것저것 만든 것들을 노점으로 파시던 할머니가 계셨다. 같이 일하는 분들 중 그 분 가족의 지인이 있어서 들었는데 동네 주민이시고 놀러가면 주로 손주들이 집 안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거 보시면서 뜨개질을 하신다고…
그 소리를 듣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뭔가 내 노년도 희망적이게 느껴졌었다.
한국 집이 있던 잠실역 지하철 입구에는 김밥이나 떡을 파시던 작고 왜소한 할머니께서 계셨다. 제대로 된 부스가 있는 곳이 아닌 목욕탕 의자 같은 것에 앉아 노점을 하시던 분이셨다. 계단만 오르면 갤러리아 팰리스나, 롯데 캐슬, 지금은 시그니엘까지 삐까 뻔쩍한 집들이 즐비하지만 할머니께서 판매를 마치시고 돌아가 쉬실 곳이 그 화려한 곳 중 하나일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된다. (그중 하나라면 다행이고)
사실 잠실역 할머니께서 시그니엘에서 안 사셔도 된다. 나는 그냥 어디서든 그 할머니께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이른 시간 김밥을 싸기 위해 일어나서 맞이하는 그 아침이 할머니에게 즐거움을 주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재빠른 배송과 서비스들은 누군가의 고됨과 밤잠 잃은 시간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생활 서비스로 자랑할 것이 많은 한국이 생활 편의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함과 동시에 한국의 노동자들의 생활 역시 행복한 나라였으면 좋겠다.
건설업에서 일하시는 분들, 한국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로 분류되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호주에서는 자격증도 있어야 하고 위험수당에 새벽이면 새벽이라고 밤이면 밤이라고 시간 외 수당까지 붙으며 꽤 고소득 직업군으로 인식되어있다.
여기는 기초 수급자 돈 받으면서 놀고먹는 사람들도 허다한데 그런 사람들이 또 뭔가 대단히 욕심을 낸다거나 억울해하는 것도 없다.
나는 그런 게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고, 아니면 그냥 기초 수급자의 생활에서 만족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위험수당을 받고, 오늘 야근했으니 내일은 조금 일찍 퇴근하는 게 받아들여지는 것 말이다.
나이 60이 넘어서 내 집은커녕 이번 주 일 시간 줄었다고 다음 주 렌트비 걱정을 하는 삶이라도 내후년에 갈 크루즈 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며 설레 하는 같이 일하는 한 아주머니처럼 자신의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곳 사람들이 좋아 보였다.
(물론 내가 이 나라에서 처한 신분이 소외계층이라 그냥 나라 돈 받고 정부혜택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것일 수도 있음 주의)
그래서 나는 호주가 편한가 보다. 사람들이 뭔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을 알아서들 지킬 수 있는 환경인 것 같아서 그들의 친절도, 서비스도, 마인드들도 딱히 불편하지가 않다.
나한테도 딱 그 정도만이면 다들 잘한다고 해주고 한국인의 근면성실 조금만 양념 치면 다들 난리 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