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Sep 25. 2021

그놈의 긍정이 지겹다 나는.

나를 이해한다는 쥐뿔도 모르는 너에게.

호텔 내 정치질이 시작되었다. 실세들의 눈 밖에 난 사람이 있는데 그를 내보내기 위한 스케줄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그 분위기를 타고 사람들이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다른 이들이 볼 때는 '여기나 저기나 행복해할 것 같은', 그러나 진실은 '여기 있나 저기 있나 불행한' 나와 내보내려고 한다는 그 사람의 시간표가 바뀌었다. 오후 근무자였던 그 사람이 내가 있던 아침 근무로 온다는 소문은 워낙 파다해서 예상 가능했지만 내가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문제는 내가 요새 제정신이 아니라서 (부러워하지 마, 공기 좋은 감옥일 뿐이야. 를 포함한 몇개의 글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뭔가 색다른 도전 한다거나 새로운 변화를 겪을 만한 마음 상태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평소였다면 이번 이동이 커리어적으로 도움이 되고, 늦잠도 잘 수 있고, 결론적으로 돈도 더 벌 수 있으니 나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이 아무 일 없어도 혼자 괴로운 시기에는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익숙한 일을 하면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나의 어리바리함을 느끼며 새로운 팀에서 트레이닝을 가장한 지적 질까지 당하고 있으니 일하는 내내 ‘내가 못해서 쫓겨난 건 아닐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컴플레인했나?’라고 자책하며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일하는 동안 열두 번씩은 왔다 갔다 한다.


사실 이번 인사이동이 나 때문이 아니고 희생양이 된 것 뿐이라는 것은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로 인한 인사이동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근거 없는 오만함이라는 생각마저 불현듯 들었다.

 


오후 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편두통이 날로 심해져 남들은 위가 아파서 못 먹는다는 진통제를 4시간마다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팀에서 친하게 지낸다는 애들과 술자리를 했다. K-pop을 좋아하는 20대라 주로 (관심도 없는)한국 가수들 소식을 전해주는 친구들인데 표정이 밝던 내가 팀 이동후 눈에 띄게 안색이 안 좋으니 사람들이 그 친구들에게 자꾸 물어봤나 보다.


“내가 지금 코로나 블루가 심하게 와 있는 상황에 가고 싶지도 않던 새 팀에 와서 너무 겁나고 자신감 하락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나한테 장난처럼 미숙함을 놀리면서 대하는 게 나를 더 위축 들게 해. 그래서 나는 영주권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어.”

 

라고 나름 솔직하게 말했더니 그 친구들이 말한다.


“I understand how you feel but you should think positive.”  하고  Be strong.”  하랜다.  

 

야 이씨…

 

순간 떠올랐다. 이 친구는 개인사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 했었던 친구이긴 하지만 27년 동안 단 한 번도 사이좋은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물론 부모님의 고향이 아시아여서 다른 가족들이 다른 나라에 있지만 나같이 모국에서 혈혈단신으로 떨어져 나와 언어, 문화가 다른 곳에서 비자와 엮어서 생계를 걱정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이 나이에는 더더욱…

너무 답답해서 순간 영어 잘하고 나보다 직책 높으니 얘기하면 좀 나을 거라고 착각했나 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한국 아이돌이 솔로로 나와 너무 좋고 포인트 안무 따라 추고 라이브 방송 보는 걸 나와 공유하고 싶어 하는 저 아이들한테 내가 뭘 기대한 걸까 싶었다.

 



나는 긍정에 지쳤다. 나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아질거란 말을 할 거면 나를 이해한다고 말도 꺼내지도 마.

‘그럼 어쩔 거냐면서 긍정적이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고말할 거면 그냥 술이나 먹고 네가 좋아하는 그 아이돌 춤이나 추라고.

 

나는 늘 혼자였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다른 형제자매들 모두 제때에 좋은 대학 가고 졸업반에 좋은 회사들 취직하면서 집안 어른들에게 응원과 조언들을 받을 때 나 혼자 흐뭇함을 안겨주는 그 루트에서 벗어나 조언이나 응원보다는 걱정과 한심 그 촘촘한 경계 어디쯤의 시선을 받으면서 홀로 살길을 찾으며 스스로 그놈의 긍정으로 버텼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와 뉴질랜드, 호주에서 이제는 내가 문밖을 나가지 않으면 누구 하나 내 생사를 확인해 줄 일 없는 물리적으로도 철저히 혼자가 된 이 상황에서 크고 작은 상황들을 견뎌내면서 누구보다 그놈의 긍정을 추구하며 살아보려고 한 시기가 있었다.

 

근데 결국 나는 이래.

 

그 친구들이 너무 단호하게 말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을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고 그냥 그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뮤직 비디오나 계속 봤다.


비자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할 필요도 없는 네가,

밖에서의 피로를 한없이 받아주는 파트너와 있는 네가,

무엇보다 집에 가면 엄마가 계시는 네가

나를 이해한다고 말을 하면 안됐다.


이제는 긍정이라는 말이 지긋지긋하고, 애초에 강해지고 싶었던 적이 없는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또 긍정이라고, 강해지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너는 나를 단 1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긍정적인 생각 좋지. 그건 그냥 멀쩡한 사람에게나 좋은 말이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행복하지 않은 사람, 자책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귀기울여지는 조언이나 위로가 아니다.


그럼 나는 과연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걸까…?

.

.

.


아무말 없어도 돼. ‘에구구구…’ 하며 측은히 바라봐주는 눈빛, 따뜻하고 진심이 담긴 온기면 당장은 버틸 수 있을거같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