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Oct 01. 2021

그럼 아무나 하고 결혼하면  되는 거야?

아무나는 또 누구야?

지금 시대에 '결혼할 나이'라는 걸 운운하는 것이 좀 진화가 더딘 사람 같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흔히들 말하는 결혼 적령기엔 뭐했는지 조차 기억에서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보내버린 채 혼자인 나에게 ‘나이 무관’ 결혼을 한 주변인들은 줄곳 말했었다.


눈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며...

남자 다 거기서 거기더라.
완벽한 사람은 없어. 적당한 사람이랑 하는 거지 뭐.


연애라는 것을 하면서 이별의 기로의 설 일이 생길 때마다 이 말이 생각났었다.


내가 좋아하는 감정이 먼저 생겨서 만났던 사람과의 연애에서도,

사귀면서 좋아지는 사람도 있다고 처음부터 너무 좋지 않아도 괜찮다 싶으면 일단 만나보라고 해서 만났던 사람과 만날 때도,

결혼하기 딱 좋은 시기, 상황에 만났지만 정작 서로 결혼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을 만났을 때도,


홀로 헤어짐을 생각할 만큼 연애에서 지쳐갈 때마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떠올리며 이 사람과의 만남에서도 분명 웃는 나도 있었으니 혹시 이가 그 ‘적당한 사람’이 아닐까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이미 마음 떠난 지지부진한 연애의 끈을 놓지 못한 적도 있었다.


다 '거기서 거기'라면 나는 굳이 힘겨운 이별의 시간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던 걸까?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 중에 도대체 무엇을 찾겠다고 나는 그렇게 울고불고 감정 소모를 하며 지금까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이 이별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은 다 감내하는 부분들을 견디지 못한 나의 잘못인건가?




지난 이별에서 나의 어리석음으로 '거기서 거기' 중에 다신 없을 '적당한 사람'을 놓친 것 아니냐며 괴로워하는 나에게 친구가 나를 진정시키고 그 누구도 명확하게 얘기 해준적 없는 '거기'에 대한 정확한 범주를 알려주었다.


꼭 죽고 못 살 정도는 아니어도 ‘이 사람과 평생 살아도 되겠다.’ 하는 정도의 사람.

‘이 사람이랑 이렇게 계속 사는 것도 괜찮겠다.’ 하는 정도.


거기서 거기를 논할 수 있는 범위란다. 이것이 전제로 되어 있는 상황에서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것이라고...


이 사람과 평생 산다면…? 이라고 생각했을 때, 내 미래가 지금보다 불행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거기서 거기에 포함되지도, 적당한 사람을 논할 자격도 없는 사람인 거라고.


그랬다.

나의 지난 연애들은 다행히(?) 그런 것이었다.

아쉬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아닌 건 아닌, 끝이 필요했던 시간들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