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생각나는 사람.
젠장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주제가 널을 뛰는 나의 글 목록들처럼 평온한 정신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염색을 했다.
큰맘 먹고 탈색도 하고 돈을 많이 들였다.
많이 들인 만큼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비싸서 엄두를 못 냈던 에쉬 칼라로 했다.
오늘이 내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나이라면서…
색이 잘 나왔다.
머리는 펌을 하든 염색을 하든, 뭘 해도 잘 먹는 머리였다.
근데 이상하게 얼굴이 동동, 마치 서툰 합성사진처럼 따로 놀고 있었다.
문제는 나의 노화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외국에 있으니 내 나이를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별 말없고, 20대 후반이라고 하면 더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나를 30대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길래 나는 내가 아직도 뭘 해도 어울리는 모양새인 줄 알았나 보다.
착각이었다.
또래를 만나기 어려운 환경이고, 같이 일하는 한참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예쁘다 예쁘다’ 해 주시니 아직 한창인 젊은이인 줄 알았고, 어린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다들 잘 놀아주길래 위화감 없이 조화로울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서른일곱, 사회 초년생이 되다 참고) 차라리 나이는 잊는 게 편했다.
문득문득 생각나기도 했지만 또래의 발달과업과 비교를 하자면 답 없이 심란해 지니까 접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또 확실하게 잊지 못한 것이 화근이다.
떠도는 인터넷 기사에서 30대 평균 자산이 3~4억이라는 소리,
TV 드라마에 내 나이로 나오는 배역들은 죄다 팀장님, 대표님이고,
한국 친구들의 집 사고 결혼하고 애 키우는 얘기에
나의 속은 말없이 시끄러워진다.
이렇게 떠오르는 생각마다 부정과 염세로 가득 차 있을 때면 늘 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예전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곳에서 알게 된 지윤이.
오래 알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안타까운 인연.
내가 봐온 사람들 중에 ‘가장 살만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하고 싶은 것에 돈에 대한 제약이 없을 만큼 대단한 자산가여서, 세상을 놀라게 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해지고 싶어 할 만큼 절대적인 미모를 소유해서가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함께 근처 치킨 집에 간 적이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지윤이에게 화장실의 청결상태를 물어봤었다.
“ 지윤아, 여기 화장실 괜찮아?”
“ 오 네~ 저는 좋아요~”
그리고 뒤이어 간 화장실은 냄새나고 더러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낡은 상태에 변기에 앉으면 문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비좁았다.
“ 아니 지윤! 화장실이 뭐가 좋다는 거야??”
“ 아 언니 거기 벽이랑 문이 하얘서요^^”
다른 팀 사람이 우리 팀에 와서 자기 팀에 있는 사람 A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간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떠나고 그 A과 잠시 일을 했던 적이 있던 지윤이에게 너도 느꼈었냐고 물어봤었다.
“지윤아, 너도 그때 스트레스받았었어?”
“아.. 저는 그때 시급을 더 줘서 그 사람은 잘 기억이 안 나요 ^^”
지윤이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상황에 있어도 가장 좋은 면을 볼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옆팀에 신입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지윤이가 전해주길래 누군가가 물어봤다.
“네 예뻐요~”
지윤이와 같이 그 신입을 본 다른 사람이 말했다.
“예쁘다고? “
지윤이가 말했다.
“ 아 네, 그분 귀가 참 예뻤어요.”
이상하게 지윤이는 억지스러움이 없었다. 밑도 끝도 없는 긍정도 아니었고, 처절한 상황 속에서 꾸역꾸역 끄집어내는 가련한 희망이란 느낌도 없었다.
그냥 보이는 세상이 환한 아이. 그늘 속에서도 빛을 볼 것 같은 사람이었다.
“ 지윤아, 나 괜찮은 거야?”
일도 잘하고 리액션도 좋아서 다들 예뻐했던 지윤이, 내가 보지 못한 밝은 세상을 말해줬던 지윤이, 무엇보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장점을 찾아줬던 지윤이와 대화가 하고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