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앤지 Oct 25. 2021

에쉬 칼라 염색이 노화로 보이는 나이

에서 생각나는 사람.

젠장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주제가 널을 뛰는 나의 글 목록들처럼 평온한 정신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염색을 했다.  

큰맘 먹고 탈색도 하고 돈을 많이 들였다.

많이 들인 만큼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비싸서 엄두를 못 냈던 에쉬 칼라로 했다.

오늘이 내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나이라면서…


색이 잘 나왔다.

머리는 펌을 하든 염색을 하든, 뭘 해도 잘 먹는 머리였다.

근데 이상하게 얼굴이 동동, 마치 서툰 합성사진처럼 따로 놀고 있었다.


문제는 나의 노화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외국에 있으니 내 나이를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별 말없고, 20대 후반이라고 하면 더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나를 30대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길래 나는 내가 아직도 뭘 해도 어울리는 모양새인 줄 알았나 보다.


착각이었다.


또래를 만나기 어려운 환경이고, 같이 일하는 한참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예쁘다 예쁘다’ 해 주시니 아직 한창인 젊은이인 줄 알았고, 어린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다들 잘 놀아주길래 위화감 없이 조화로울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서른일곱, 사회 초년생이 되다 참고) 차라리 나이는 잊는 게 편했다.

문득문득 생각나기도 했지만 또래의 발달과업과 비교를 하자면 답 없이 심란해 지니까 접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또 확실하게 잊지 못한 것이 화근이다.

떠도는 인터넷 기사에서 30대 평균 자산이 3~4억이라는 소리,

TV 드라마에 내 나이로 나오는 배역들은 죄다 팀장님, 대표님이고,

한국 친구들의 집 사고 결혼하고 애 키우는 얘기에

나의 속은 말없이 시끄러워진다.


이렇게 떠오르는 생각마다 부정과 염세로 가득 차 있을 때면 늘 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


예전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곳에서 알게 된 지윤이.

오래 알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안타까운 인연.

내가 봐온 사람들 중에 ‘가장 살만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가 하고 싶은 것에 돈에 대한 제약이 없을 만큼 대단한 자산가여서, 세상을 놀라게 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해지고 싶어 할 만큼 절대적인 미모를 소유해서가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함께 근처 치킨 집에 간 적이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지윤이에게 화장실의 청결상태를 물어봤었다.


“ 지윤아, 여기 화장실 괜찮아?”

“ 오 네~ 저는 좋아요~”


그리고 뒤이어 간 화장실은 냄새나고 더러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낡은 상태에 변기에 앉으면 문이 무릎에 닿을 정도로 비좁았다.


“ 아니 지윤! 화장실이 뭐가 좋다는 거야??”

“ 아 언니 거기 벽이랑 문이 하얘서요^^”   




다른 팀 사람이 우리 팀에 와서 자기 팀에 있는 사람 A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간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떠나고 그 A과 잠시 일을 했던 적이 있던 지윤이에게  너도 느꼈었냐고 물어봤었다.


“지윤아, 너도 그때 스트레스받았었어?”

“아.. 저는 그때 시급을 더 줘서 그 사람은 잘 기억이 안 나요 ^^”



지윤이는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상황에 있어도 가장 좋은 면을 볼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옆팀에 신입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지윤이가 전해주길래 누군가가 물어봤다.

“네 예뻐요~”

지윤이와 같이 그 신입을 본 다른 사람이 말했다.

“예쁘다고? “

지윤이가 말했다.

“ 아 네, 그분 귀가 참 예뻤어요.”


이상하게 지윤이는 억지스러움이 없었다. 밑도 끝도 없는 긍정도 아니었고, 처절한 상황 속에서 꾸역꾸역 끄집어내는 가련한 희망이란 느낌도 없었다.  

그냥 보이는 세상이 환한 아이. 그늘 속에서도 빛을 볼 것 같은 사람이었다.


“ 지윤아, 나 괜찮은 거야?”


일도 잘하고 리액션도 좋아서 다들 예뻐했던 지윤이, 내가 보지 못한 밝은 세상을 말해줬던 지윤이, 무엇보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장점을 찾아줬던 지윤이와 대화가 하고 싶은 오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 아무나 하고 결혼하면  되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