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생활 5년 동안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
한국에 남아있는 내 짐은 우체국 택배 상자 6호 사이즈 1개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마저도 스무살 때부터 한국 떠나기까지 써오던 일기장이 대부분이라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한 다섯 박스 정도 되는 분량의 것들이 내 인생 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한 번씩 짐 정리를 하게 되는데 호주에 와서 5년 동안도 한 번도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버리기는 아쉬운 물건들을 추려보았다.
1. 겨울 신발
이 신발로 말할 것 같으면 한여름에도 오전 11시~오후 3시 약 4시간 정도를 제외하고는 늘 서늘한 만년설을 배경으로 있는 뉴질랜드 퀸스타운에서 있을 때까지만 해도 필수품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였던 신발이었는데 사시사철 따뜻한 호주 퀸즐랜드로 오니 방습제의 유효기간도 잊은 채 신발장에서 꺼낼 일이 없다.
나의 오지 친구들은 영하는 무슨, 그냥 10도만 돼도 춥다고 말을 하기 때문에 겨울의 온도인 그즈음에 이들의 집에 놀러 가면 다들 집안에서 어그 부츠들을 신고 있기도 한다. 화창한 날씨가 대부분인 호주 퀸즐랜드에서 주로 활동하는 낮 시간은 제 아무리 겨울이어도 온난한 날씨를 동반하기 때문에 밖에서는 어그부츠를 신은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반면 우리나라에서의 트렌치코트처럼 이곳에는 잠깐 지내가는 찰나의 패션이 패딩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춥다고 말하는 10도만 되도 부지런히 패딩을 꺼내 입고 나오곤 한다.
패딩+반바지가 아주 자연스러운 곳이 바로 이곳이지.
일단 나는 이 신발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나와 잘 어울렸으며 호호 추운 겨울의 기억을 내 안에서 영영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미국에 있는 친구와 한국 들어갈 날짜를 맞춰 보는데 코끝 시린 겨울이 너무 그리워져 버렸지 모야. 꼴랑 2~3주 들어가는 일정에 비싼 겨울 옷들을 다 사야 되니 많이 망설이고는 있지만 나는 언제나 한국에서는 여름보다는 겨울! 한국은 겨울이 오고 있어서 참 좋겠다. 진짜 겨울.
2. 구두 패드
한국에서 느지막이 힐 신는 것에 재미가 들려서 신발장을 털어 가져온 힐들이었지만 지금은 한 개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다 처분하였다. 너무 안 신어서 색이 바랜 것도 있었고 여기서 주로 입는 옷들과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얼마 신지도 않는 힐 하나 때문에 옷을 새로 사야 할 판이어서 힐을 포기했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만 봐도 신이 났던 힐들을 다 보내고도 빈자리가 안 느껴지는 이유는 진심으로 거들떠도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주 생활 5년의 대부분이 학생이었고 일하는 곳도 움직임이 많은 호텔이니 편한 게 대수였던 터라 자연스럽게 편한 옷들에 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티가 생활 반경일 때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밥도 먹고, 클럽도 다니면서 날 잡고 멋 부리는 날을 만들기도 했고, 오피스 워커들 틈에서 힐을 신은 나 역시 거부감이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피스 워커가 아닌 나에게는 그래 봐야 어쩌다 한 번, 예쁜 옷이 나를 부르던 날들이라 여분으로 가져온 구두 패드는 있었는지도 몰랐던 물건 중 하나였다.
게다가 지금, 속옷만 필수 나머지는 옵션인 동네에 어딜 가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나는 곳에서 지내니 힐은 무슨… 양말에 운동화도 굉장히 격식 차린 거지..
그렇지만 나도 언제까지나 여기서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니깐. 다시 시티로 돌아가서 뾰족구두 신으며 또각또각 걸어 다닐 날이 올 거니깐. 그래서 힐에 대한, 힐을 신을 내 모습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지 못하고 비상약처럼 아직도 가지고 있지.
3. 때수건
보기만 해도 아픈 때수건.
더 이상 어머니를 통해 개인위생에 대한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고 부터는 때수건을 쓴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이건 어머니께서 넣어두신 게 틀림없다.
아니 내가 안 씻는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지내고 있는 유닛에 때를 불릴 수 있는 욕조가 없고 덜 자극적인 스크럽제들을 자주 쓰면 그렇게 지우개 가루처럼 나오던 때를 만날 일이 거의 없거든. 샤워는 하루에 한 번, 여름에는 두 번씩도 한다고.
내가 이 때수건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선물용이다. 요새 다방면에서 빛나고 있는 한국인들 덕분에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데 조만간 누군가 한국의 목욕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우리에게는 흔한 부채였지만 내가 선물한 부채를 거실에 전시해둔 내가 일하던 호텔의 단골 고객이었던 노부부처럼, 나에게는 쓰라린 기억의 때수건이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해주는 사람이 곧 나타날 것 같단 말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