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고기랑 친하지가 않다.
잠시 우리와 함께 지내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조기를 엄청 좋아하셔서 식사 때가 되면 어머니께 “나는 조기 한 마리랑 찬밥이랑 김치만 있으면 된다~”라고 늘 말씀하시곤 하셨다.
몸에 좋다고 하면 처음 보는 음식도, 맛이 없는 음식도 일단 먹고 보는 언니와 달리 나는 편식이 엄청 심했었고 생김새와 다르게 엄청 비위가 약했다. (지금도 그렇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도 항상 물에 젖은 밥 위에 생선을 올려 주셨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별로였다. 딱히 다른 먹고 싶은 것이 있었던 건 아닌데 그냥 그 비린내가 너무 싫었다. 나 빼고 다른 가족들은 맛있다고 냠냠 먹는데 나는 씹지 않고 입에 물고 있다가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 뱉어내던 기억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인생 더 살아야 해.
역시 애정있는 어른들의 말씀은 일단 새겨두고 볼일이다.
아직 조기의 레벨을 언급하기에는 다소 조급한 감이 있지만 어쨌든 평생 물고기 없이 살수 있을 것 같았던 나도 나에게 맞는 물고기를 찾아내고 말았다.
호주에 와서 만난 Barramundi 었다.
첫 만남은 피시 앤 칩스를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튀김옷 사이로 살포시 속살을 드러낸 Barramundi는 수줍고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와 뒤돌아 서면 생각나는 호주의 벗이 되어주었다. 몇 번의 만남으로 두터운 신뢰를 쌓았고 이제는 두터운 외투에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않은 그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비린내가 덜하고 오동통하고 뽀얀 속살을 지닌 Barramundi는 물고기를 싫어하는 물고기자리인 나의 마음을 움직여 내 돈 내고 물고기를 사 먹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한국에서는 내 관심이 물고기에 향해 있었던 적이 없어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는 아주 흔한 종이라 음식점에서 fish of the day 나 today special에 Barramundi로 되어 있는 요리가 있다면 웬만큼은 하니 나처럼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편식은 그만 하고 싶은 분들의 고민하는 첫걸음에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 믿는다.
가재류. 흔히 말하는 랍스터(lobster)인데 사실 내가 영화에서 나오듯 앞뒤 파인 드레스 입고 망치로 두들기며 먹는 랍스터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전문적이고 정확한 비교분석은 어렵지만, 느낌상 그 랍스터의 보급화 버전이 아닐까…?
매주 토요일마다 씨푸드 부페를 하는 호텔에서 일을 하는 행운으로 다음날 미처 소진되지 못한 bugs가 있으면 맘껏 먹을 수 있는 복지를 누릴 수 있게 되어 그 맛에 눈을 뜨게 되었다.
한때 왕래를 했던 가족 중 포항에 사셨던 분들이 계셨는데 그 집에 놀러 갔었을 때 영덕 대게를 집에서 삶아 주셨다. 그러나 뜨거운 열기 속에 뭔가 노력에 비해 얻은 것이 없었던, 그래서 사실 맛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슬픈 사연이 있다.
근데 이 놈은 달랐다. 대단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알찬 결과를 선뜻 내 주어 팍팍한 내 삶을 조금이나마 손쉽게 만들어주니 웬만하면 예뻐하려고 했는데 웬걸… 맛까지 너무 좋잖아…
그때그때 market price에 따라 가격 변동이 있기는 한데 지난주 supplier ‘피셜’ 1kg에 45달러 정도 한다는 저 대단한 놈을 쌓아두고 먹을 수 있는 그 순간은 정말 재벌각.
포크로 끝을 콕 찍어 쓱 당겨주면 깔끔하게 올려지는 폭신하고 쫄깃한 저 친구를 호주식 칵테일소스 혹은 씨푸드 소스에 찍어 먹거나, 우리식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뭘해도 입안에 가득 담기는 오세아니아의 향.
'나 해산물 좋아했네.'
한국이나 호주나 집밥을 먹었을 때 주는 어떤 안락감이 있다. 평화롭고 여유 있게 먹고 싶은 것 양껏 먹을 수 있고 골라 먹을 수 있는 편안함도 있다.
내가 경험한 호주식 집밥에 특별한 건 없었다. 전통적인 우리 밥상에 밥, 국, 반찬이 있었다면 여기는 고기, 야채(salad or steamed) 그리고 감자류(mashed or roasted).
호주 엄마들이 한국 엄마들처럼 다양한 음식을 뚝딱뚝딱 쭉쭉 뽑아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쨌든 밖에서 먹는 음식들에 비해서는 훨씬 담백하고 덜 자극적이다.
물론 내가 먹는 호주식 집밥이라고는 나의 호주 가족분들(외국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필수 요소 참고)과 가끔씩 초대해주시는 호텔 단골손님이신 노부부의 음식이긴 하지만…
탁 트인 발코니에서 유유자적하는 백조들을 보며 먹는 점심이라면,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샐러드 그릇 주고받으며 오손도손 나누는 이야기 속에 먹는 저녁이라면 메뉴가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
함께 하는 이 순간의 모든 것들이 모든 맛을 다 만들어 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