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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Jun 08. 2021

멈추고 싶었던 그날의 일기.

멈추고 싶었던 그때, 돌아가고 싶은 지금

나의 미래를 잃어버린 한국에서 살 방법을 찾지 못해서 나는 뉴질랜드로 왔다.  


외로움을 벗 삼아 지내온 지난 시간들이 상상 속 시간들처럼 느껴질 만큼 지난 두 달간 북적이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엄마가 오신지 한 달여만 큰 이모께서 오셨고 큰 이모께서 오신지 일주일 만에 오신 작은 이모께서 내가 지내고 있는 뉴질랜드에서 첫 세 자매 해외여행을 하셨기 때문이다.  

 


산 넘고 바다 건너 내가 일하는 곳에 엄마와 이모들이 놀러 오시고, 내내 아껴두었던 직원 anniversary voucher로 우리 호텔에서 이분들과 저녁+ 숙박+ 아침식사까지 뉴질랜드 판 호캉스 경험하기도 하고, 내가 늘 혼자 걷던 그 길을 가족들이 걷고, 홀로 앉아있던 미사 시간에 가족과 나란히 앉는 경험을 하게 되다니..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흔쾌히 응해 주실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바쁘신 외삼촌께서 함께 하지 못해 엄마의 사 남매 완전 체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다음 기회에 더 멋진 곳에서의 재회를 기약하며...


미래를 꿈꾸기 전에 오늘을 감사하게 해 준 시간,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준 분들.


큰 이모가 귀국하셨고 그다음 주에는 작은 이모.. 그리고 이제 엄마가 한국으로 가신다.

나는 그 이후를 상상할 수가 없다.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시는 엄마가 계신 마지막 밤 불 켜진 집.


집 열쇠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게 익숙해졌다. 엄마가 항상 열어 주셨으니까...

직원들 식사에 양고기나 venison 같은 못 먹는 음식들이 나와도 괜찮았다. 집에 가서 밥 안 먹고 왔다고 하면 엄마가 마술처럼 뚝딱뚝딱 만들어 주실 테니까...


엄마는 원래 계시기로 한 두 달 반 을 채우시고 짐을 싸 시는 건데 나는 엄마가 그냥 그렇게 천년만년 나랑 같이 지낼 것만 같았나 보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엄마의 평안이 느껴졌다는 이모의 말씀을 듣고 나는 내 반 환갑 인생에 이토록 보람 있었던 일인 있었나 싶었다.  혼자 보기 아까운 이 예쁜 광경들을 엄마와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엄마 혼자 차 마시고 책 보시고 산책하는 그 시간이 편안하실 수 있어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오늘을, 엄마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출근길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퇴근길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아니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늘 떠나기만 했던 나를 지켜보던 엄마의 심정도 이러셨을까....


한국에서 다시 홀로 견디셔야 하는 상황들을... 그 안의 감정들을 부디 여기서 보셨던 광활한 대자연의 흐름과 같이 초연히 보내실 수 있기를...  


배고프니?


엄마가 항상 문을 열어주실 때마다 내게 해주셨던 말..

엄마가 옆에 계셔도 보고 싶은 오늘... 앞으로 진짜 진짜 말 잘 들을게요. 그냥 시간이 멈추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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