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홀리데이를 생각하는 분들에게...
호주 정부에서 코로나로 인한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30세 이하 (혹은 35세 이하)를 대상으로 하던 워킹홀리데이 나이제한을 50세로 늘리는 것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이 50에 워킹홀리데이라…
모두가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를 아주 강력하게 규제했던 호주에서 어느 나라보다 활짝 국경을 여니 이제 곳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눈빛과 마냥 신기해하는 어색한 미소의 워킹 홀리데이(이하 워홀) 비자 소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0대 중반에 워킹홀리데이 2년을 꽉꽉 채우고 비자 때문에 끌려 나가다시피 떠났다 다시 호주로 돌고 돌아와 지내고 있는 나의 워홀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하고 싶은 얘기들이 참 많다.
본인의 철저한 계획하에 준비된 실력을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라면 알아서 잘할 것이고 혹여 계획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그 또한 잘 처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워홀이 단순히 도피성인 영어실력이 변변치 않은 젊은이들이라면…
경험상 꽤 나쁘지 않은 도피처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처음에는 한국에서는 앞다퉈 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낼 자신은 없고 이것저것 시도를 해봐도 딱히 걸리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영어권 나라에 와서 지내다 보면 뭔가 경쟁력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 막연한 희망이 있기도 했었으니까.
도피에도 목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겨운 경쟁사회에서, 부모님의 눈치에서, 친구들과의 비교에서 등등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시기’라고도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망을 갈 때 가더라도 더구나 외국이라면 당장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엇을 얻고자 하는 정도’의 목적은 가지고 있었으면 한다.
(돈 걱정이 없는 사람은 제외) 부모님 곁을 떠나는 순간 말 그대로 놀고먹는 데에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처음 보는 외국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이 없고 번화가에서 일을 할 정도의 영어 실력이 된다면 카페나 레스토랑, 호텔등뿐만 아니라 다양한 회사에서 일을 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영어로 말을 해야 할 때 두근두근 하는 마음에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형편이라면 영어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가능한 농장이나 공장, 한국 사람들의 관리하에 하는 한국 음식점이나 청소등의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어 실력이 좋든 안 좋든 이곳에서 일을 하기 위해 혹은 일을 하면서 겪었던 합법적인 경험들은 모두 젊었을 때 인생에서 한 번쯤 해도 괜찮은 '젊은이스러운' 일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종종 보게 되는 호주에서 한국 사람들과 일을 하고, 한국인들과 살고, 한국인들에 둘러 쌓여 한국 술집을 찾아다니며 $15짜리 소주를 마시며 외국에서 대단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시간일지라도… (나도 가끔은 그들 속에 은근 슬쩍 껴서 호주에서 한국인 무리와 함께 어울리는 경험을 하고 싶었던 적도 있으니까.)
다만 그것이 나의 워홀의 전부라고 한다면 이 호주가, 한국보다 할 일은 없으나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이 나라에서의 그 시간이 조금 아까울 수는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권 나라에서의 영어 실력은 출발선이다. 워홀비자에는 기간이 정해져 있고 도망치기 바빠서 영어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 와서 적응기간이라는 핑계로 한국인들과 어울리며 영어 실력을 늘리지 못했다면 영어실력이 준비된 사람들과 출발선 자체가 다를 것이고 경험할 수 있는 거리도 아주 달라질 것이다.
영어실력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 될 필요는 없다. 영어권 나라에서의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생활'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풍요로움을 결정지어 줄...
숨통을 트이기 위해 한국에서 도망쳐 왔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호주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경험하고 갔으면 좋겠다.
밭에서 딸기를 따며 오전 7시 48분의 햇살에 살갗이 타보는 경험도,
망고를 박스에 담으며 나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stone fruits allergy로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었으며,
농장일 찾아 친구들과 벤을 빌려 로드트립 겸 농장을 찾아다니던 시간도,
긴 웨이팅 끝에 구한 양파농장에서 허리가 끊어질 듯한 경험을 하고 야밤에 도망쳐 나왔던 일도,
같이 일하는 동료이자 하우스 메이트인 외국인 친구들과 일 마치고 집 외벽을 화면 삼아 빔으로 달밤에 맥주 한잔과 영화를 보던 일도,
고기 공장에서 본인의 운명을 직감한 듯 컨테이너에 실려 울부짖으며 공장으로 들어가는 소들을 보는 것도,
농장 및 공장 경험 충분하다며 시티 잡을 구하겠다고 호기롭게 (여기도) 노란색 두꺼운 전화번호부의 A부터 Z까지 각종 회사들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한 군데에서도 오퍼를 받지 못했던 굴욕적인 순간도,
호텔에서 일하는 중에 한국인 직원이 없는 옆호텔에서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 고객의 통역을 맞게 된 일도,
거절 못하는 성격에 남들 땜빵 다 메워주다가 이달의 사원에 뽑히게 된 일도,
글씨 잘쓴다고 스페셜 메뉴판 만드는 일들을 도맡에 하게 된 일도,
아무것도 모르고, 수줍게 미소만 짓던 내가, 일 그만둔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일했던 지난 상사들의 잡오퍼 연락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마치 한편의 성장드라마 같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의 용기와 조금의 부지런함, 조금의 도전정신이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나의 얕은 경험들보다 더 무궁무진한 경험들로 워킹(working)+ 홀리데이 (holiday) 그 이상의 멋진 인생 영화를 시리즈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
나에게 호주는 도피처였고 도통 내게는 보이지 않던 미래로 가는 통로였고 이제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워킹 홀리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