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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란 Feb 19. 2021

그들은 내게 왜 서점을 차리는 일에 대해 물었을까

#아침에는일기를


"서점 언제 차릴 거야?" 사람들이 묻는다. 

"음... 그게..." 나는 머뭇거린다. 머뭇거린 그다음 날은 네이버 부동산 앱을 켜서 목 좋은 상가 자리가 있는지 거리뷰로 골목을 헤집고, 월세가 얼마인지, 월 팔십만 원이면 하루에 몇 시간 동안 문을 열고, 몇 권을 팔아야 운영이 가능할지 구체적으로 숫자를 세어본다. 머뭇거린 그 다음다음 날은 다른 일에 치여 잊는다. 그러다가 누군가 또 "나란 씨, 서점은 언제..." 물으면 그 다음날 다시 네이버 부동산 앱을...(반복)


3년을 지내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 내게 물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머뭇거렸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상상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내게 왜 서점을 차리는 일에 대해 물었을까.


시가 총액 4조의 첫 회사를 나왔을 땐 누구도 내게 "넌 언제 회사 차릴 거야" 묻지 않았는데. 100만 다운로드 앱을 만든 스타트업에서 퇴사했을 적에도 "스타트업 씨이오 되는 거야?" 같은 농담을 건네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건만(있었다면 스타트업 해볼 용기를 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북동 서점원 생활을 접고 나서는 엉겁결에 '서점 지망생'이 되었다.


나도 나에게 진지하게 속곤 한다. 세상에는 예쁜 책장과 조명이 넘쳐나고 소개하고 싶은 작가와 책이 한 보따리 인 데다가 다년간 다져진 행사 체력이 아직 고갈되지 않았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현재의 명함도 한몫한다. 서울을 떠나온 지 3년(정확히는 2년 6개월). 명함은 있지만 사회가 보장하는 4대 보험 안전지대에는 존재 않는 무명의 작업자라는 점은 주기적으로 안정되기를 바란다. 기껏 자유를 주었더니 이제는 구속이 좋단다. 소속되기를, 정해진 출근과 퇴근이 있기를, 경계에서 서성이지 않고 어느 편에 서고 싶댄다. 그럴 땐 "서점을 해야 하나..." 생각한다. 정작 왜 하고 싶은지는 물어본 적은 없으면서 무의식에 복종하려 한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이러한 복종은 '권위주의적 양심'이다. '내가 마음에 들고 싶거나 심기를 거스르기 두려운 권위자의 목소리가 내 안에 내면화된 것'. '의식상으로는 나의 양심을 따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미 나는 권력자의 원칙을 완전히 삼켜 내 안에 받아들인 상태'. 서점이라는 루틴을 만들어 거기에 복종하고 싶은 마음. 정상적인 삶의 범주에 소속되지 못해 싹튼 나의 불안은 복종의 미덕을 학습한 결과일지도 몰라.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자연의 일부로 살았다. (...) 대지 그리고 어머니와 연결되었던 끈을 끊음으로써, 탯줄을 자름으로써 (...) 독립과 자유를 향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불복종의 행위는 아담과 하와를 자유롭게 했고 눈뜨게 했다. 불복종의 행위는(...) 인간을 자유롭게 했다. 그것은 역사의 시작이었다.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는 법을 배워 온전한 인간 존재가 되기 위해 인간은 에덴동산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불복종에 관하여(9-10p)>


에리히 프롬은 복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이 이상했다. 아담과 하와는 불복종의 결과 자유를 얻었고, 우리는 그들에 의해 역사를 가진 휴먼(개인)으로서 지구 상에 지위를 누리고 있는데 어째서 불복종은 악덕이기만 한 것인가(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어떤 진리를 보았던 걸까. 아니면 지금의 여느 연인들처럼 애정이 불복종의 씨앗이 된 것인가). 


그는 조금 과격하게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역사의 현시점에, 의심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냐 문명의 종말이냐를 가를 모든 것일지 모른다'(여기서 '현시점'은 1960대를 말한다). 


불복종의 자유가 미래의 역사를 만든다. 근사한 명분이다. 그래, 3년의 시간을 복종하지 않았기에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고, 내 이름을 건 매거진을 만들 수 있었던 거야. 언제든 평일 아침 8시에 문 여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고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야. 내 미래의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 지고 있는 거야... 


"서점 언제 차릴 거야?" 누군가 묻는다면, 앞으로는

"역사를 만드는 중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기를.


다가오는 3월에는 동해에 가서 새 작업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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