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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cura Dec 27. 2021

이제 정말 통번역사입니다.

이력서 쓰기부터 

졸업고사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 기말고사도 몇 과목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정말 전문통번역대학원의 4학기 과정을 모두 마쳤다. 뭐가 됐든, 이젠 정말 통번역사가 맞다. 활동하는 통번역사가 되느냐, 이름만 통번역사가 되느냐는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입시준비 기간과 부득불 할 수 밖에 없었던 휴학기간을 포함하면 장장 8년에 걸쳐 이루게 된 타이틀인데, 도통 실감이 나지 않는다. 졸업장만 받을 수 있을 뿐이지, 사실 뭔가 실제로 된 건 아니니까 그런 것이겠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다고 다 (활동하는) 통번역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사실 출간된 번역서가 두 권이나 되니까 이미 번역사는 된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아직도 내가 번역사라는 생각이, 내 직업이 번역이라는 생각이 선뜻 들질 않는다. 첫 직업 때도 그랬던가,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가, 번역사라는 직업 원체 진입장벽도 없고, 실체도 없고, 잡히는 게 별로 없는 직업이라 그런가 잘 모르겠다. 

첫 직업에 대한 미련이 미련스럽게 남아 있어서 그런 지도 모른다. 원래 싫어서 떠나면 아무 미련 없을 것에도, 누가 억지로 떨어뜨려 놓으면 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원치 않게 커리어를 포기하고 경단녀가 된 것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별 볼 일 없는 아줌마가 되었다는 자격지심 때문인지 첫 직업에 대한 아쉬움이 이렇게도 오랫동안 남아 나를 괴롭힌다.

휴학기간에는 해외에 있으면서 어차피 일 없이 보내는 시간 기회비용도 없으니 번역 연습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번역회사에 등록해서 프리랜서 번역사로 일했다. (인터넷으로 가능한 열심히 서치하여) 가급적 규모가 있는 회사로 추려 번역회사 3곳과 계약을 했고, 번역사로 등록했다. 번역 단가도 얼마가 적당한지 몰라서 알아서 달라고 했다. 번역일이 워낙 시간 투입 대비 돈이 안되는 일이라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일을 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업계 최저 수준으로 일을 했던 것 같다. 휴학생 신분이었고, 나도 연습 겸 하는 것이니 처음엔 그럭저럭 했는데, 작업량이 많아질수록 힘이 들었다. 빠듯한 납기일을 맞추기도 힘이 들고, 최저 시급도 안 될 것 같은 일에 나의 모든 정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가치없게 느껴졌다. 고심 끝에 번역회사 두 곳을 정리했다. 정리라고 해봐야 별 건 없다. 수주 받은 일을 두 세번 거절하면 번역회사에서도 알아서 번역사를 정리한다. 그렇게 한 회사와만 거래한지 5년째다. 일은 별로 많지 않았다. 나는 그냥 노는 사람이 아니라 번역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정도의 일만 들어왔다.

이젠 본격적으로 일을 찾아야 한다. 번역회사도 3~4군데 정도로 늘려 볼 생각이다. 이제 정식 통번역사가 되었으니 단가도 좀 현실적으로 맞춰야겠다. 번역사가 생각하는 번역의 가치와 번역회사가 생각하는 번역의 가치가 차이가 있으니, 거절당할 것도 각오를 해야 하겠지. 어차피 수 백군데 번역회사 모두와 거래할 것이 아니므로 거절 몇 번 당한다고 상처받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나는 오직 2~3군데 회사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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