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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cura Mar 08. 2022

낭(狼)과 패(狽)를 아셨나요?

이런, 낭패일수가...

이제 나도 어엿한 통번역학 석사가 되었으니(!), 책을 한 권 읽더라도 자세를 고쳐 앉아 경건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굳은 다짐을 하고 집어든 첫 번째 번역서 <약속의 날>(신이우 저, 문학동네)에서 그만 난적을 만나버렸다. 

 


'낭狼'과 '패狽'*의 속된 취향 


*낭(狼)과 패(狽)는 모두 '이리'를 나타내는 글자로, 낭은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으며 패는 그 반대여서, 길을 가려면 반드시 패가 낭의 등에 앞다리를 걸쳐야만 한다. 둘이 서로 떨어지면 균형을 잃어 넘어져 당황한다는 데서 '낭패'라는 말이 나왔다.


<약속의 날> 중에서



원문의 언어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번역서를 보면 가끔 본 적도 없는 원문이 저절로 보일 때가 있다. 번역문이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직역인 경우가 보통 그러한데, 사실 번역가로서 어찌할 도리가 없어 직역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번역문의 경우, 번역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가 느껴져서 얼굴도 모르는 그에게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적절한 어휘를 찾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과 수고를 거친 후 결국 한 선택이 직역이라는 건 번역가에게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낭狼'과 '패狽'*의 속된 취향은 소설 속 한 챕터의 소제목이었다. 한문 병기와 비교적 긴 주석을 읽으며 해당 챕터의 내용에 '낭(狼)과 패(狽)'가 의미있게 등장하는 모양이구나 짐작했다.  한국어에 '낭패'라는 단어가 원문과 동일하게 쓰이고 있고, 해당 챕터에 다른 적절한 어휘로 치환될 수 없는 '낭(狼)과 패(狽)'가 등장한다면 이 단어는 포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낭패'의 어원을 한국에서 아예 설명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직역에 가까운 이 소제목의 표현은 번역가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나아가 적절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내겐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 우선 한국어에는 동음이의어는 많아도 이음동의어는 흔치 않은 데다(낭(狼)과 패(狽)가 같은 이리라도 다리 길이가 다르니 완전한 '동의어'는 아닐 수도 있겠다),  두 동물 모두 상상 속의 동물이라 연상도 쉽지 않다. 그러하니 '낭狼'과 '패狽'*의 속된 취향이라는 제목을 읽고는 순간 '으잉?'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번안 소설이 아닌 바에야 작품의 원산지(!)를 적절히 드러내는 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소설의 경우 등장 인물의 이름이 우리에겐 여전히 낯설기 때문에 두 줄에 한 번씩은 '아, 이 소설이 중국 소설이구나'하는 각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주인공 '펑란'은 된발음도 없고, 반복되는 글자도 없으며, 발음도 길지 않아 괜찮지만, '펑사오예', '쩡페이', '류캉캉' 같은 이름은 등장할 때마다 강한 어감 때문에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진다. 지금은 활자로도 음성으로도 한글 이름 만큼 익숙해진 영어식 이름도 개화 초기 서구의 번역 소설이 막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는 퍽이나 어색했을 것이니, 중국식 인명에 대해 느끼는 어색함도 아마 곧 사라질 것이다(중국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속도가 현재와 같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긴 하겠지만).


번역가는 아마 등장 인물의 이름으로도 원작의 국적이 수시로 드러나는 작품에서 직역이 최선일 수도 있는 어휘를 굳이 무리해가며, 오해나 오역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의역을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의 번역가는 '낭狼'과 '패狽'의 어원에 나보다 친근한 번역가였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  '낭狼'과 '패狽'를 번역할 보석같은 한국어가 어딘가 있을 것이다. 얼마나 공부를 더해야 그 보석같은 단어를 내 주머니에 다 모아 넣고 꺼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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