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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cura Dec 06. 2021

쑤퉁(蘇童)<처첩성군(妻妾成群)>

처와 첩으로 무리를 이룬다

오래전에 산 책이다. 수월히 읽히는 책이니 아마 그때 다 읽기도 했을 것이다. 

몇 년 만에 다시 집어 든 책은 새로웠다. 처음 읽는 책 같으니, 이 기억력을 어찌하면 좋을까. 


쑤퉁은 한국에 알려진 몇 안 되는 중국 작가 중 한 명이다. 중국에서는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아시아뿐 아니라 서구 여러 나라에도 작품이 번역되어 출판된 저명한 작가이다. 영화 <홍등>을 비롯해 영화화된 작품도 여럿 있다. 



<처첩성군(妻妾成群)>은 처와 첩으로 무리를 이룬다는 뜻으로 근대 중국에까지 이어진(사실 지금도 도시 어디에선가 횡행하고 있다는) 축첩제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 <홍등>의 원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작품의 디테일만큼이나 제목이 주는 인상이 달라서 다소 의외였다. 영화 속에서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던 홍등은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소 건조한 제목 그대로 소설의 내용도 은유적 제목의 영화와는 차이가 있다. 보통 소설 원작이 있는 경우 영화보다는 소설을 선호하는 편인데, 장이모우의 힘인가, 이 작품은 영화가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위화만큼이나 간결한 문체가 특징적인데, 원문도 그만큼 그러할지, 번역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문체가 간결할수록 단어 하나하나가 더 힘이 있고, 어색하다고 느낀 단어는 더 도드라져 보이기도 했는데, 가끔 자갈 같은 게 발부리에 채이는 느낌이었다. 매우 좋은 번역이지만, 번역이란 것이 본래 번역가 개인과 독자 개인의 간극이란 것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므로 고생하신 번역가에게 미안해 할 필요는 없으리라. 어떤 자갈에선 번역가의 고심이 역력히 느껴지기도 했다. 원문을 보고 싶다는 생각과 괜찮은 유의어 사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쑹렌의 운명은 첸씨 가문에 발을 들이는 순간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100살은 족히 되어 보이도록 늙었지만, 그 자리를 절대 위협받을 일 없는 첫째 부인이 될 수도 없고, 겉 다르고 속 다르게 행동하면서 오직 남편의 사랑을 붙잡기 위해 갖은 모사를 서슴지 않는 둘째 부인이 될 수도 없었다. 이미 떠난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며 병든 나무처럼 말라가다가 외도를 하고, 그로 인해 파국을 맞게 되는 셋째 부인이나 생식능력도 없어진 남편으로부터 자식을 얻을 가능성마저 사라져 위태로운 자리보전에 전전긍긍하다 미쳐버리는 넷째 부인인 자신의 삶 정도가 가능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그 음산한 우물에 계속 이끌렸던 것인지 모른다. 


소설은 첸씨가 (여러 방면으로 능력이 소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어린 신부를 첩으로 맞는다는 내용으로 끝이 난다. 소설은 끝이 나는데, 비극은 계속되는 느낌이다. 그것이 가능한 시기였으므로, 그는 죽을 때까지 어린 여자를 들이고 또 들일 것이다. 그 많은 여자들은 모두 비슷한 삶을 살게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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