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글
제안을 듣다. 사실, '제안을 받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왠지 어리숙한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게 거창한 문장인 거 같아 '듣다'라는 말로 고쳐 써 봤다. 4번째 연기 수업시간. 먼저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는 한 달 전 연기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진짜 연기를 하고 배우가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고 마흔이 넘고 중반이 되어가면서 내가 표정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내 가슴 절절히 슬프게 느껴져서 시작한 수업이었다. 그리고 4주 차에 접어든 나는 다행스럽게도 지금 나에게 가장 적절한 수업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사실, 그래서 쓰기 시작된 것이었다. 연기 수업의 숙제였던 감정일기. 4주 차에 접어든 나에게 선생님이 "쓰신 감정일기를 브런치라는 앱에 한번 올려 보면 어때요?"라는 말을 한 것이다.
그 말 한마디에 내 가슴은 기분 좋게 두근대기 시작했고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실룩대다가 스스로 무안해서 그걸 멈추고 또 반복하고 있었다. 브런치라... 사실 벌써 3~4년 전 한 번 해 보고 싶었지만, 내 글을 누가 읽으랴, 그리고 무엇보다 뭘 써야 하나, 내가 남들보다 딱히 아는 것이 있나? 그러다 나는 아니겠다 싶어 포기한, 글을 쓰고 글을 읽는 내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이고 멋진 앱. 브런치 스토리.
잊고 있었던 그 것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다니... 집에 돌아오는 길은 비가 와서 차는 막히고 엉켜서 평소 같으면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었는데도 내 머릿속은 마치 꽃밭이었다. 벌써 마치 키보드를 두드리는 거 마냥 어깨에는 살짝의 기분 좋은 긴장과 손가락 끝에도 딱 그만큼의 분주함이 계속 맴돌았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고 공감한다는 것이... 그때도 그런 생각 이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고 내 얘기를 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지금과 그때의 내가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나의 어떤 이야기든 글로 쓰고 누구라도 공감하고 공감받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를 벌써 생각하고 있다. 기분 좋은 상상으로 나는 오랜만에 몸이 가볍다고 느꼈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더니, 지금 내가 딱 그 꼴이다. 오늘 수업의 한 줄 요약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생님의 별생각 없었을 수도 있는 그 한마디가. 선생님이 나라는 고래를 춤추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내가 부끄럽고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집에 도착해 급하게 주차를 하고 아들의 저녁식사를 빠르게 준비하면서도 나는 다른 날보다 바쁘고 또 기쁘다. 그 기분에 맞춰서 팔과 다리는 마치 춤을 추 듯 리듬감 있고 빠르게 움직인다. 할 일을 다 해놓고 뭐라도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감정이나 느낌의 종류는 다르지만 가끔 나는 이렇게 낯설고 자주 보이지 않는 나의 솔직한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어른인 척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냥 나이가 그러니까 상황이 그러니까 특히 아들이 보고 있으니까 같은 이유들로 사실은 하나도 단단하게 자라나지 못했으면서 마치 성숙한 어른인 척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보통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 부정정인 나의 상태나 유치한 나의 상태를 보고 생각할 때가 대부분인데, 오늘은 신나고 설레는 상태임이 다행이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어쩌면 나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어른들이 그런 상태로 '~척'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비밀도 아니지만, 말싸움을 할 때면 그 사회적 위치를 중요시 하는 내 남편조차도 참 유치하기 짝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