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장녀로 태어난 하소연 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잠잘 정도로 늦은 시각은 아니었지만, 저녁 8시쯤 되었을 때였나 보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셨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네가 엄마한테 말도 안 되게 버릇없게 군 게 이유였다. " 말도 안 되게 버릇없게 굴다 "를 누구의 기준으로 말할 수 있을까 싶긴 한데, 그래도 이번 일은 글쎄.. 대한민국에 부모가 되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怒)할 수준의 일이었다. 동생네는 결혼한 지 1년 반 정도 되었는데, 둘 중 한 명의 중재자도 없이 같이 편을 먹고 엄마에게 달려들었으니 말이다. 속상한 엄마의 얘기를 한참 듣고 맞장구를 쳤다. 아니 맞장구를 쳤다는 표현보단, 나 또한 놀랐고 거기에 합당한 리액션들이 입에서 터져 나왔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갑작스러운 " 니도 다를 것 없다. 니도 똑같다. 니도 저번에 어쩌고 저쩌고 내한테 그러데. " (우리 엄마는 경상도 분이시다.) 갑자기 그 노(怒) 여움이 나에게로 왔다. 뭔가 왜 갑자기 나를 가지고 그러느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 하지 못 했다. 동생네 일로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알고 있는 나이 든 딸이기에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중엔 울기까지 하시는 모습을 보니, 난 아무것도 한 게 없지만 엄마마음만 풀린다면 나도 좀 같이 씹히면 어떤가 싶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사과를 하지 않은 동생네로 아빠, 엄마, 나, 남편 이렇게 넷이 저녁상에 앉았지만, 유쾌하거나 즐거운 대화는 커녕 어제 있었던 일의 대화의 연속이었다. 와중에 엄마 편을 들다 보니 동생네를 비난 아닌 비난하게 된 내 말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 니도 말할 것 없다. 네가 따뜻한 말 한마디만 동생한테 더 해줬어도.. 저렇게..."
"......"
대면하고 있는 상태였고, 아빠의 표정까지 여실히 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순간 감히 '절망스럽다'란 감정을 떠올렸다. 이틀 연이은 공격 아닌 공격은 ' 서운하다 '라는 말로는 표현하기가 힘들어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같았다. 많이 속상하신 아빠엄마의 현재 상태였고 무엇보다 난 대들거나 하기엔 이미 마흔 하고도 중반의 엄마가 된 딸이 아니던가.
그런 내 모습을 눈치를 채셨는지, 어제만 해도 날 붙잡고 너도 똑같다던 엄마가 아빠를 일부러 나를 보란 듯이 치면서, "와 이라요? 야가 뭘 잘못했는데? 야같은 언니가 어딨다고 그런 말을 하는데 " 라셨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보란 듯하시는 행동과 말투에 위로받기엔 난 이미 나이가 너무 많지 않은가.
그렇게 저렇게 거진 2주가 지나도록 동생네의 말없는 횡포에 아빠, 엄마는 더 마음이 메마르고 속이 상해 갔고,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나에게 뜬금없는 화살이 돌아오곤 했다.
나는 이미 부모다. 저번 언젠가 글에서 자식에 대한 내 마음을 쓴 적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난 더 성숙하게 부모님을 대하고 인내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부모님들 또한 그에 대해 기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그 K-장녀라고 하던가? 그 K-장녀의 인내의 끝이 어딘가에 대한 생각은 종종 하곤 한다. 어떤 날은 나도 부모님 상황을 배려하지 않고 나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내고 시원해지고 싶다. 왜냐하면 꾹꾹 눌러 담을수록 내 속이 멍이 들다가 구멍이 나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럴 때 즈음, 엄마에게라도 아주 조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시작이라도 할라치면, " 너까지 그러면 안 된다. 니가 장녀라서 아빠엄마가 편해서 그러는 건데, 그렇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등등의 또 다른 훈계들이 돌아온다.
그럼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내 탓이든 아니든, 그저 그렇게 손해를 보든, 마음에 상처를 입든, 큰 딸이니까.. 장녀이니까.. 부모님 마음만 헤아리고 내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언젠가 일본작가 시모주 아키코의 책 중에서 ' 가족이라는 병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참 잘 지은 책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농경사회에서 시작한 덕분에 가족구성원으로서의 희생은 당연했지만, '산업혁명'을 거쳐 21세기 4차 혁명을 앞둔 지금 이제는 개인의 '희생'이 아닌 개인의 '자유'와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중요시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정도의 이야기로 읽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너무 많은 것들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
좋은 책이고 추천하지만, 난 저 책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는다. 난 요즘 사람? 치고는 제법 아니 많이 가족주의? 인 편이다. 웬만하면 가족은 함께하고 많은 것을 공유하고 돕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자는 주의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나의 뜻은 집 밖은 너무 추우니 말이다. 다들 알고 있지 않나. 집 밖은 생각보다 늘 춥고 냉정하다. 그래서 난 집 안에서만은 그게 진짜 핏줄의 가족이든 아니든, 가족끼리는 늘 cheer up 해주는 사이가 되자는 주의이다. 여기까지는 나의 ' 가족 '에 대한 생각인 거고.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 장녀로서 강요받는 내 역할과 내가 받아낼 수 있는 정도의 크기.
나도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태어나 자라왔으니, 당연스레 내 몸에 스며든 K-장녀의 DNA가 있다. 거기까지는 나도 해 낼 수 있다. 그런데 내 그릇의 크기를 벗어났을 때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 말이다. 지금처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브런치스토리에 하소연이나 하기?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술이나 넷플렉스로 생각을 다른 쪽으로 미루기 위한 노력? 그래봤자다. 모든 현실이 그렇듯. 그 잠깐의 여유 시간이 지나면 전혀 바뀌지 않은 현실은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래도 나 같은 경우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스럽게도 경제적인 부분에서 K-장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많은 경우에 경제적 부분까지 그러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더 놀라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K-장녀들이 ' 죄책감을 많이 느낀다 '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바로 나. 였기 때문이다. 힘겹고 버겁고 서운하고 막막하면서,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어렸을 적부터 나한테만 유독 엄격했던 엄마,
둘째 한 테처럼 하듯 나에게는 살갑게 애정표현을 하지 않던 아빠.
기본 옵션으로 그렇게 살아왔는데도 지금도 뭔가를 더 참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이젠 나잇값까지 해야 하는 때까지 왔으니 말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미 나는 정답은 커녕 해답조차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우리는 이미 살아왔던 거처럼 앞으로도 살아가야 한다.
나이 든 부모님에게 ' 변화 '란 다 늙은 딸의 ' 반항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단지 나는 오늘 K-장녀라고 불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나 하나뿐은,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하나뿐이 아니라는 거.
적어도 사람이라는 건 ' 우리 '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리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끼리 부모님 몰래 여기서 조용히 약속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자식에게는 지금의 이런 내 모습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거,
내가 많이 늙어 지금과 많이 달라진다 하더라도 너에게 너의 서운함과 억울함을 숨기고 너의 노력함과 애씀을 늘 내 마음보다 먼저 살피는데 애쓰겠다고.
내 스스로 한 자처한 너에 대한 희생에 대한 보상을
너에게 억지스럽게 고집부리지 않겠다고.
내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그거다.
내 자식, 우리의 자식들에게는.
늙어서 약해질 내 마음이 소중한 만큼이나 젊음이란 무게로 무거워진 네 마음도 소중하다는 걸 늘 살피고 만지고 보듬겠다 약속하고 싶은 마음.
너에게는 내가 짊어질 마음의 짐을 대신 지게 하거나 나에게 말 못 해 가슴에 멍이 드는 일은 없게끔 하겠다는 그런 마음.
이런 마음을 되새기고 되뇌고 아로새겨 행복한 네가 행복한 늙은 나와 함께 편히 대화하는 그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