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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May 26. 2019

한국은 ‘김 부장님’, 일본은 ‘다나카 상’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 -13>>

      

지금부터 30년도 더 오래 전인 1987년, 일본에서 경제동우회라는 단체가 하나의 제안을 한다. 앞으로 기업에서 입사 순서대로 위아래가 구분되는 시대가 끝날 테니, 후배가 윗사람이 되는 시대에 대비해, 새로운 직장 내 매너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우린 아직 군사정권이던 그 옛날,  일본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상당수 기업들이 이 주장에 귀 기울이고 호응했다는 점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직장 내 새로운 수평 문화 만들기에 나섰고, 그들이 주목한 것은 호칭이었다.     


서로를 부를 때 직급이나 직책을 붙이지 않고 위나 아래나 ‘다나카 상’, ‘나카무라 상’ 식으로 우리말로 치자면 ‘씨’나 ‘님’ 정도인 존칭 표현, ‘상’을 붙여 부르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일명 ‘상 붙이기’ 운동.     


그때까지 일본은 당연히 다나카 부장, 나카무라 과장으로 부르고 있었다. (우리와 달리 부장 뒤에 님과 같은 존칭은 붙이지 않는다. 부장 과장이란 말에 이미 상대를 높이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그들은 본다)     


서로를 ‘아무개 상’으로 부르자는 운동은 꽤 활발하게 퍼져나갔다.(현재 아무개 상으로 부르는 회사는 35% 정도라고 한다) 연공서열의 질서가 역전되는 상황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면서 일본 특유의 수직적 문화에 숨통을 틔워 창의적 조직으로 바꿔보자는 기대도 가미됐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는 사장이 직접 나서 나를 사장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무개 상이라 부르라고 ‘독려’ 하기도 했고, 어떤 회사는 ‘상 붙이기 운동 중’이라는 가슴 리본을 달고 근무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캠페인은 ‘상’이라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사용하기 적당한 일본어 존칭 표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도 못할 일은 아니지만 직장 상사를 아무개 님이나 아무개 씨라고 부를 때 생기는 어색함과 대비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운동이 벌어진 이후, 일본은 장기 불황에 진입해 과연 이 운동이 소통 강화에 도움이 됐는지 궁극적으로 조직 발전에 효과가 있었는지는 불명확하다. 오히려 전통의 호칭법이 기강 확립, 일사불란함, 책임 배분 등에서 더 낫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게 힘을 얻고 있다. 일종의 역풍이 불고 있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과 소통 탈권위라는 방향이 대세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요컨대 신구 문화의 대립은 지금도 진행 중일 만큼 장기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웃나라의 이런 경험을 바라보면서, 동양사회에서 수평 문화를 이룬다는 건 역풍과 냉소를 이겨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겠구나,,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 게다가 이른바 젊은 꼰대가 늘고 있는 한국사회로 돌아와 보자. 


프로야구팀 NC에서 3년간 뛰며 엄청난 기록을 남겼고, 그 덕분에 미국 메이저리그로 돌아간 에릭 테임즈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병역의무가 있는 한국은 모든 것이 군대 스타일이다. 감독은 대통령이다. 감독이 무언가를 말하면 선수는 모두 그대로 한다. 미국에선 선수가 싫으면 코치와 언쟁해도 되지만 한국은 코치의 말에 따르는 게 당연하다.”     


그는 2014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도 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한국에 대해 완벽한 백지상태였던 이방인이 한국을 어떻게 느꼈을지 참으로 궁금한데, 3년간 경험한 한국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은 게 ‘군대 문화’라니....    


한국에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테임즈는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 이렇게 말한 게 아니라 그냥 솔직하게 얘기했을 뿐이다. 상상도 못한 상명하복 문화가 이 활기찬 나라에 깔려 있어 깜짝 놀랐다고 얘기했을 뿐이다. 우린 이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기업들도 서로를 영어식 이름으로 부르게 하기도 하고 직함 없는 호칭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이런 외형적 변화에 쓴웃음만 날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군대 문화에 허리춤까지 깊숙이 박혀있는 한국사회에서 호칭을 달리 한다고 조직문화가 바뀌겠는가... 근본적인 회의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호칭을 바꾼다고 조직 문화가 확 바뀐다고 장담하진 못하지만, 호칭의 변화조차 없이 조직문화의 달라짐을 바라는 건 더 공허한 기대 아닐까.    


일본은 병역의무도 없고, ‘상’이라는 적당한 존칭 표현이 있고, 대대적인 캠페인까지 벌였는데도 아직 근본적인 변화까지는 갈길이 멀다. 우리는 병역의무가 있고, 대체할 적당한 표현도 쉽지 않고, 캠페인도 아직 없다.


우리의 꼰대 문화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추방할 수 있을까?  수평적이고 소통하는 조직, 그 시작은 무엇이 돼야 할까?  일본은 이미 30년 전부터 고민을 시작한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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