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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Jun 05. 2019

‘기생관광’에서  ‘아가씨관광’으로?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14>>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한국에서 온 말들이 꽤 있다. 특히 비빈바(비빔밥) 나무루(나물)처럼 음식 용어에서 한국말이 많이 섞여있는 걸 볼 때면 역시 먹거리에서 우리와 그들의 접점이 수월하게 만들어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반갑고 괜히 기분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본어의 한국발(發) 외래어는 그들이 받아들인 한국의 어느 모습, 그들이 포착한 한국의 어느 모습 아닐까? 그들이 각별히 관심 갖게 된 한국의 어느 얼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아가씨’라는 우리말이 일본에서 사용되는 건 무슨 의미인지, 일단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아가씨(アガシ)


먼저 그들의 사전적 해석은, ‘남의 집 딸이나 미혼 여성을 높여 부르는 한국어’라고 돼있다.


그러나 ‘아가씨’가 이런 사전적 의미로 일본에서 소비되는 게 아님은 곧 알게 된다. 사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맥락과 전혀 다른 의도로 유통되고 있음을 곧 알게 된다.


아가씨를 그들의 사이트에서 일본어로 입력하면 당황스럽게도 이런 후기를 만난다.


“한국 서울의 에스코트 아가씨, 초절정 미인과 연애 기분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이게 무슨 말일까. 그러고 보니 다른 검색에서도 아가씨 앞에는 ‘에스코트’라는 말이 붙어있다. ‘에스코트 아가씨’라는 일본식 신조어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된다.


“에스코트 아가씨 예약 사이트. 신인 다수. 최고를 찾는 당신은 여기에서. 예쁘고 친절한 에스코트 아가씨 150명 이상 보유. 한국 최고의 접대를 제공한다.”


한국 성매매 관광 사이트에 아가씨 설명하는 항목


그렇다. 일본 남성들을 상대로 한국 성매매 관광을 홍보하는 글들이다. 한국 여성이 같이 다니며 관광 안내도 하고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동침을 하는, 성매매 관광. 이런 상품을 알리는 사이트들이 널려있고, 그 일을 하는 한국 여성들을 일본인들은 ‘에스코트 아가씨’라 부르는 것이다.


1970, 80년대 일본 남성들 사이에 한국 기생 관광이 유행하던 시절, 일본인들에게 한국은 여성을 쉽게 살 수 있는 나라로 그려졌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성을 사고 농락하면서 또 한편 그런 이유로 한국은 형편없는 나라라고 비웃고 무시했다.


기생 관광이 사회 문제가 된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였다. 일본 여성들이 공항까지 나와 기생 관광을 떠나는 일본 남성들을 향해 비난 시위를 벌이면서 ‘심각한’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지금의 일본을 이끄는 아베 총리가 촉망받는 의원 시절이던 1997년. ‘역사교과서에 대한 의문’이라는 책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그의 발언이 실려 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본질적으로 매춘 문제라고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에는 기생 하우스가 있어서, 그런 것(매춘)을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게 말도 안 되는 행위가 아니라 상당히 생활에 녹아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위안부 피해 여성을 성매매 여성과 일반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지탄받을 최악의 인식이다. 여성을 끌고 가 폐쇄적인 곳에서 인신 구속을 하고 성노예로 삼은 거 자체가 범죄이지, 그 여성이 무슨 일을 했던 사람인가를 따지는 건 또 다른 인권 말살이라는 게 보편적 상식이다.


아베 총리의 뒤틀린 이해는 그 자체로 중대한 주제지만 일단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우리는 아베 총리의 이 발언에서, 일본인들이(특히 유력 인사들이) 한국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기형적 사고의 원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한국 사회를 ‘성매매가 만연한 나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원래 성을 ‘쉽게’ 사고파는 나라라고 규정하고 소비하고 즐기면서 또 비웃고 손가락질해온 것이다. 그들의 이런 관점은 최종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한국은 ‘여성 인권’을 주창할 자격이 없는 나라다....”


위안부 문제에서 뻔뻔하게 맞서는 저들의 저변에는 바로 이런 인식이 깔려있다. 우리는 어이없지만 이른바 망언으로 표출되는 그들의 사고 구조는 바로 이런 단정에 떠받쳐져 있는 것이다.


다시 아가씨 논의로 돌아와 보자. 에스코트 아가씨라는 일본 말은 규모와 형태가 달라졌을지는 몰라도 한국은 여전히 성매매가 만연한 국가라는 그들의 낙인찍기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한국 '아가씨' 관광 선전 사이트의 사진들


한국 ‘아가씨’를 등급 나눠 가격을 매겨놓은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일부의 저급한 문화로 치부하고 외면하면 그만일까. 한국과 한국 여성을 쉽고 편하게 사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그들을 그냥 무시해버리면 정말 되는 것일까.


과거에는 기생 관광에서 지금은 아가씨 관광으로 바뀌었을 뿐, 일본인한테 성매매 관광지로서 한국의 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단언한다면, 누군가 지나치다고 과연 반박할 수 있을까.


한국을 그런 나라로 왜곡해 인식하고 소비하는 일본과 일본 남성들에게 분노한다. 이웃 나라를 노리개 대상으로 바라보고 탐하는 그들에게 분노한다.


하지만 이게 일본과 일본 남성들만의 잘못일까. 그들이 달라지면 해결되는 걸까. 한국은 왜 성매매 대국으로 성장한 것일까. 그 안에 갇힌 여성들은 무엇이고, 이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성매수자인 한국 남성들은 또 무엇일까.


우리는 진정 우리 사회를 납득하고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일본에서 퍼져가는 한국말, ‘아가씨’가 매우 불편하게 질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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