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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추리 Jul 05. 2019

여중생을 납치한 교사.."그는 착실했다"?

<<보이는 거와 많이 다른 일본 -16>>

최근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 시의 한 중학교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수학 교사이자 한 학급의 담임을 맡고 있는 27살 우치다 신야가 그 주인공.


6월 25일, 기말고사 시험일에 우치다 교사는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오전에만 시험을 치르고 귀가하기 때문에 교사들도 부담이 크지 않은 날이었다. 누구도 그의 휴가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속을 알 수 없는 젊은 교사에게 이 날은 D-데이였다. 그는 담임만 볼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해 한 여학생의 집에 침입한다. 미리 가족관계와 혼자 집에 있는 시간 등을 파악해둔 것이다. 그의 목적은 납치와 성폭행이었다.

제자인 여중생을 납치한 우치다 신야 교사


학생은 저항했으나 우치다 교사는 전기충격기와 칼 등으로 위협해 끝내 자신의 차로 끌고 갔고, 집안은 둘 사이의 몸싸움으로 엉망이 됐다.


귀가한 학생의 부모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신속하게 움직인 경찰은 차량을 추적, 다행히 여학생을 구출하고 자해하는 우치다 교사를 검거했다.


학생을 납치하다니.. 그것도 집에 침입해서.. 이런 인간이 교사라니... 당연히 언론은 흥분했고 보도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사건을 전하는 일본 언론에서, 늘 ‘왜일까’ 주목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굳이’ 범인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범인이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인터뷰해 보도하는 방식 때문이다. ‘굳이’라고 말하는 건 그런 인터뷰 내용이 천편일률적이기 때문이다.


우치다 교사가 어떤 교사였는지, 다음과 같은 주변 사람의 증언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소개됐다.


“너무 놀랐고 안타깝다, 우치다 교사는 성실하고 착실했으며 근무태도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착실한 교사였다. 굳이 나쁘게 말하자면 융통성이 조금 부족한 면이 있었다”   


다른 언론도 우치다 교사의 평소 행실을 지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는데, 성실하고 착실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우치다 교사가 평소 착실했다고 말하는 학교 관계자

물론 우리 언론도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범인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추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일본 미디어는 그렇게 엄청난(?) 사건이 아닐 때도 범인이 어떤 사람인지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는 취재가 일종의 관행처럼 이어지곤 한다.


게다가 엄밀하게 취재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웃사람이나 지인에게 ‘그가 어떤 인상이고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묻는 정도다. 매우 정형화된 답을 시청자와 독자에게 단편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착실하고 좋은 이웃이었다는 주변 사람의 ‘평가’가 과연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비슷한 시기에 이런 사건도 있었다.


기무라 이사오 64세. 여학생을 납치한 뒤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2억 원을 준비하라고 요구했다가 금세 경찰에 체포됐다. 무시무시한 범행으로 보이지만 아마추어의 단독범행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사건은 쉽게 해결됐다.


기무라는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TV 카메라는 기무라의 주변 사람에게 향한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부인과 외출할 때 사이좋아 보였고, 착실하게 열심히 일했어요. 이 가족 모두 좋은 분이었어요, 보통 주변에서 보는 소탈한 분이었어요” 


이번에도 역시 전혀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여학생을 납치해 부모를 협박한 기무라 용의자


물론 사건에 따라서 ‘좀 이상했다’ ‘주변과 교류가 거의 없었다’ 같은 증언이 가끔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 착실하고 성실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증언이 이어진다.  


일본 미디어의 이런 취재 관행은 도대체 ‘왜’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취재는 결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정확히는 ‘그가 주변에 어떻게 보였는지’를 알아보는 게 목적이고 실제로 그렇게 취재를 한다. 주변 사람의 느낌을 묻는 그런 방식으로 말이다.


범죄자의 깊은 정체를 파헤치는게 아니라, 평소 주변에 어떻게 보였는지, 얕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게 해서 대부분 이런 답을 얻는다.


착실하고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고...


그렇다. 범죄자가 평소 주변에 어떻게 보였는지 ‘뻔한 답’을 굳이 묻고 들어서, 정작 꼭 말하고 싶은 '결론'은 확실히 ‘따로’ 있었던 것이다.


범죄자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별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좋은 이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 실체를 전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심하게는 우리 모두 어느 순간 그런 나락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건 보도를 통해 그들은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있다.


범죄자다운 특성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어떤 범죄자든 평소에는 선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일상적으로 강조하는 사회가 바로 일본이다.


차갑고 의심 많고 경계하는 일본인이라는 이미지 뒤에는, 누구든 정상의 궤도에서 일탈할 수 있다고, 누구든 무서운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그들의 ‘자유로운’(?)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이런 생각이 과연 사회와 사람을 바라보는 옳은 시선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실을 현실로서 받아들이는 자세로는 매우 실용적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아닌 행위를 보게 되고,  자연히 사람과 관계를 절대화하는 실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지금도 뉴스를 통해, 범죄자 다운 범죄자가 아닌 범죄자 답지 않은 범죄자를 접하고 느끼고 있다.

쉽게 믿지 않고 꼼꼼히 따져보는 그들의 태도는 이런 일상 속에서 만들어졌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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