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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리 Sep 05. 2024

태어나게 했다는 죄책감

얼마 전 내가 노나바 셋이 잘 노는 사진을 스토리에 올린 것을 보고 한 지인이 dm으로 둘째 고민을 이야기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아이를 계획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 같았다.


고민하는 사람들이 참 좋다. 내 경험으로는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작하고나면 잘 한다. 신중한 사람들의 장점이다. 세상에 준비 된 부모가 어디 있을까. 각자의 상황과 성향과 가치가 다를 뿐이다. 덧붙여 적어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준비 되어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격려해주고 싶었다.


나는 참 오만했었다. (주로 오만함)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좋아했고 육아에 자신이 있었다. 나름 줏대를 가지고 호기롭게 셋을 자연주의 출산까지 했는데 이후 육아에 완전 패배했다. (고 느꼈습니다). 나도 불안도가 높은 편인데 그런 사람들의 장점은 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아는 나에게는 모든 예상과 두려움과 염려치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오늘 아침 이 풍경을 보고 찍고, 찍은 것을 다시 보는 내내 지난 날 나의 패배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과거의 나. 졌지만 잘 싸웠네. 이런 선물같은, 기적같은 장면들을 보려고 내가 그렇게 싸웠었네.

그렇게도 무너졌었네.


태어나게 했다는 죄책감을 벗어버리기로 했다. 태어나게 해줘서 고맙다는 아이들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나는 생각보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걸 알았으니까.


내가 가진 두려움 중 일부가 ‘자기 검열’이었다는 사실을 최근 여러 사람들한테서 들은 말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자아성찰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이제 쓸데없이 내가 지은 감옥에서 나갈거다. 민폐도 끼치고(그래왔지만) 실수도 하고(매번 하지만) 모순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할거다.


아이들이 내 힘이 되어주리라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 정신건강담당.

내 처방들.

내 아픔들.

내 기쁨들.

내 미래들.

건강하게 자라서 훨훨 날아가자.

내 날개가 되어줘서 고마워.


 나도 그럴게. 끝까지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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