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 아니어도 살겠다, 싶은 순간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내 눈에 이다지도) 이쁘지만 않았어도 나 좀 편하게 살겠다. 싶은 날들은 또 어찌나 많았는지. 매번 화내고 짜증 내고 나면 아니 이 사람아, 어쩌자고 저 어여쁘고 어린것에게 그리했는가. 자책으로 셀프 등짝 스매싱을 날리던 날들.
요즘도 고된 감정 노동을 치른 날 밤이면, 맥주로 죄책감을 씻어낸다. 그다음 순서는 자는 아이들 방에 가서 목소리를 줄이지도 않은 채, 00아! 엄마가 사랑해! 알았지? 하며 아이들이 잠결에 끄덕거릴 때까지 고문하는 것이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맘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애정이 동나버린 금고의 바닥을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은 아이들이다. 들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는 건 나다.
아이들에게 후회할 행동을 하고야 말고, 다음 날 거뜬히 갱신되어 하염없이 밝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자책하고, 그럼에도 더 나아갈 수 없는 나를 선명히 보는 일의 반복. 또렷한 괴로움.
아, 나는 말이지. 더는 이렇게는 못살아. 이거 놔 봐. 더는 못해.라고 욕을 하고 도망을 가도 시간은 끈질기게 나를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오늘도 흠 없는 사랑이시자 천국 자체이신, 거룩한 3인분의 사랑이 나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내가 있는 곳이면 몰려들어 공기를 덥게 만들고, 귀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닌지 왜 안나는 건지 의심하게 만들고, 뭘 자꾸 묻히고 흘리다가 내가 부르는 소리엔 대답을 아니하신다.
훗날 내 아이들이 기억하는 엄마는, 틈만 나면 아프다고 , 방에 가서 누워있고, 핸드폰 보다가 못 들어놓고 짜증 내고, 그래놓고 밤이면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끼니마다 식탁에서 생색내고, 생일이면 3일 전부터 편지 쓰라고 (정성 들여 써오라고) 협박하고, 자기는 화내면서 아빠한테는 화내지 말라고 하는 부조리의 여왕이자 감정기복의 아이콘이자 모순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해도 할 말이 없지라.
언젠가 아이들이 머리 커져서 방에선 나오지도 않고, 산책 가자 캠핑 가자 타일러 봐도 꿈쩍 않는, 다정하면 되려 징그러울 것도 같은 사춘기가 된다면. 엄마란 사람이 그때 왜 그랬냐고 따져 묻는 날이 온다면.
그런다면…
그저 미안했다고. 나도 잘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지 않느냐고, 지금이라도 잘하겠다고 대답해야겠지. 지금 잘하면 되는데 이런 걸 대비라고 하면서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나란 사람이 너네 엄마다. 알겠냐.
무튼 간에 그런 날이 온다면, 저런 대답이라도 해야 하기에. 따져 묻는 말이라도 들어야 맞짱이라도 뜨니까, 그러니까. 내일 하루만, 하루만 더 잘해보자고. 맘먹어보는 밤이다.
나는 지이이인짜 더는 못 하겠는데, 두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차본 적 없음) 몇 킬로 되는 배낭을 메고(메본 적 없음) 물집 잡힌 발을 조금도 봐주지 않은 못된 군화를 신고(닥터마틴 애정..) 구보를 종일 뛰다 쓰러진 군인 마냥 처량한 맘으로. ‘더는 못 가요. 차라리 버리고 가주세요.’ 애원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음 날 아침 몽롱한 정신으로 아침 점호를 하는 나에게. 흠 없고 깨끗하신 3인분의 사랑이 묻는다.
“사랑은 정말 실패하지 않나요?“
앞에선 끌고 뒤에선 등 떠미는 사랑 덕에 오늘도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반려인 눈치를 보고, 밤엔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내일이면 아무 일도 아니어라. 그리고 나, 인간아 제발 자라나라. 한 뼘이라도, 한 치라도, 자라나라 자라나라. 그리고 아이들의 기억은 부디 애정 가득한 기억들로 왜곡되기를. 왜곡되어라, 왜곡되어라. 주문을 왼다.
와중에 위안이라면 위안일 것이, 모든 생은 파도처럼 밀리어 왔다 쓸리어 간다는 것이리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맞이해야 할, 휘날리어야 할, 바람이라는 것이리라.
6년 전 겨울, 나에게는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때, 첫째 아들을 껴안고 엉엉 울고 싶었던 내 마음속 절규는 ‘사랑은 정말 실패하지 않는 걸까’ 였다. 내가 믿었던 명제가 또 한 번 부서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사랑은 실패해도 사랑이다. 수많은 실패 끝에 내가 틔운 싹을 보니, 그것도 사랑이었다 싶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괴로운 나와는 달리 3인분의 사랑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해맑은 내일이 온다는 것을, 덜 자란 어른인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고백해야지. 그 맑음이 내 그늘 보다 밝아서 내가 이만큼이라도 자랄 수 있었다고, 너희들의 사랑에는 실패가 없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