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이 되길 바라며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한 지 1년이 좀 넘었다.
내가 약을 먹기로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엄마로서 나라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이 되길 바래서였다. 어려웠지만 첫째 아이도 진단 받고 함께 약을 먹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아이가 기울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기울어진 시선을 가진 채로 어른이 된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많은 오해와 불편들을 쌓아 올렸고 그 수만큼의 실패와 수치감을 주렁주렁 달고 살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서 내가 싫어했던 엄마의 모습을 닮은 나를 볼 때마다 괴로웠지만 그래서 더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서 나의 못난 점을 거울처럼 볼 때는 죄책감을 느꼈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내 뇌의 일부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탓은 어쩌면 나의 가정 환경 때문이었겠지만 부모님을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단단히 메고 있는 줄이 내 과거의 어느 곳엔가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끈은 나만 끊을 수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나는, 그렇게 조금씩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ADHD는 단순히 집중력이 떨어지는 병이 아니다. ADHD환자가 먹는 약도 단순히 집중력을 높여주고 공부를 잘하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 아니다. 나는 약을 복용한 지 1년 만에 다른 성인ADHD 환자들이 약을 먹자마자 느낀다는 머릿속의 안개가 걷힌다는 느낌을 확실히 느끼고 있고, 무엇보다 내 삶을, 그리고 나 자신을 좀 더 성실히 가꾸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사실 진단 직후에는 고양감 때문이었는지 이해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는지 묻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 하고 다녔다. 그런데 ADHD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서 이제는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 주변에 ADHD라고 느껴지는 이들 중 괴로워 하는 이들에게는 약을 권해보는 편이다. 내가 느끼기에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섣불리 권하지는 않는다. 나도 그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곳에 써 내려 갈 이야기들은 투약 일지도, ADHD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는 것도아니다.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내가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 나를 다독이기 시작하면서 느낀 것들을 남기고 기록하기 위해서다.
천방지축 엉망진창에 잘난척만 하고 살던 내가 사실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해 아장 아장 걷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참회록일지, 스스로 자학하고 검열할 줄 밖에 몰랐던 내가 나를 격려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뿌듯해 써보는 성장기 일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으로 씨앗처럼 심겨지지 않을까 하는 기도문일지.
모르지만 소소하게, 유쾌하게 ADHD와 동고동락하며 ‘나’를 극복해 나가는 해방일지가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