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의 영심이
#10
기숙사에서 고시원으로, 다시 자취 생활로 이어진 나의 대학 생활은 해방감과 성취감을 느낀 시간인 동시에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밤마다 가만있질 못하고 두 시간씩 걸어댔다. 무언가 분출하지 못한 것들이 나를 앉아 있지 못하게 했다. 그 에너지로 그림을 그렸다면 뭐라도 됐을 텐데. 나는 내가 봐도 참 한심한 인간이었다. 있는 척, 아는 척, 여유로운 척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됐다. 참 못났었다. 그때쯤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 깨어 있는 동안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의식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혼자 방에 있는 시간 말고는 나는 늘 긴장 상태였다. 뇌를 그냥 빼서 던져버리고 싶었다. 아마 어릴 때부터 그때까지 만났던 주변 친구들 중 누구도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정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애처럼 보였던 것은 내 안에서 철저히 계산된 이미지였다. 구제불능, 안하무인, 그런 말을 듣는 게 좋았다. 그 말을 듣는다는 것은 내가 모든 사람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숨겨왔다는 증언이었으니까.
#11
약을 먹게 되면서 나를 이해하게 된 30대의 영심이는 어린 시절, 사춘기 시절, 20대의 영심이를 정말로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참회록을 쓰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는 있지만, 나 정말로 그렇게까지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당시 내 내면세계를 너무 솔직하고 자세히 묘사하려다 보니 정신분열에 과대망상에 다중인격자인 것 같아서 내가 지금 이게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다.
제가 하려는 말은 여러분, 그게 아니에요. 뭐 그렇게 생각해도 지금은 정말 상관없지만.
저는 환자였어요.
그것을 ADHD라고 요즘은 부른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그 병을 가지고 살아온 나의 삶의 단면을 한번 죽 읊어 본 것이에요.
제 내면세계는 이랬고, 내 외면 세계는 훨씬 재밌고 웃기고 엉망진창이었답니다.
나의 (지금은) 너무 사랑하는 작은 언니는 옛적부터 이런 나를 창피해하면서도 가족이니까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주려 했던 인물이었는데, 그 과정은 험난 했어요. 무시당하고 핍박당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그녀에게 충분히 사과를 들었기에 여기까지만 할게요.
그런데 그게 뭐 가족 잘못이겠어요. 내 병이 그런 걸.
그나마 그런 도움으로 여태껏 목숨 부지하고 살아온 것이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 살아있답니다.
20대의 나를 더 적나라하게 묘사하지 못했던 건, 20대 때 전반적으로 내 삶을 장악하고 있었던 신앙심이라는 기준이, 또 다르게 내 삶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고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지금은 내게 상당히 고단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거로부터 해방되어 나름 자유로이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나'로 살아가는 것을 연습 중이다.
다음 글부터는 그 '연습'에 대한 기록들을 담아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