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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리 Oct 09. 2024

영심이의 걸후드 1

영심이의 어린 시절은

  #1

 어렸을 땐 해 질 녘이 싫었다. 매일 같이 놀던 못둑 위에서 산봉우리 너머로 해가 사라지려는 것을 볼 때 심장이 두근 거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돌아가야만 하는 쓸쓸함. 어린 나는 집으로 가야 한다.

 집은 잊고 지냈던 내 이름 세 글자가 새겨진 명찰을 끄집어내 가슴팍에 달아야 하는 것처럼 갑갑하게 느껴졌다. 흔하고 평범한 여자 아이 이름. 어느 시골집에 청각 장애를 가진 다혈질 아빠밑에서 자란 가난한 집의 셋째 딸. 그것은 어린 내가 그곳에서 생각할 수 있는 나에 관한 전부였다.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매일 저녁, 가슴이 서늘했다.


  #2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어린 나는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 쓰레기를 주워다 소꿉놀이를 하고, 친구들을 불러다 하루종일 헤집고 다녔다. 누구보다도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그러다 하루가 끝나고 자려고 누웠을 때는, 낡은 이불을 입술 아래에까지 덮고 천장을 보고 누웠을 때는, 그때는 공허했다.

내 마음은 단물이 다 빠진 풍선껌처럼 부풀렸다 터뜨려지고 그러다 다시 씹고, 내뱉어지기를 반복했다. 다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에서 나오는 노래를 돌리고 또 돌려가며 듣다 잠이 들면 다시 아침이 오는 게 싫었다.


  #3

 싸우는 소리에 깨는 아침이 허다했다.

 아빠는 할머니를 미워했다. 할머니는 그런 아빠를 끔찍이도 챙겼고 나는 그런 할머니를 미워했다.

내가 아직 자고 있는 아침, 밥상에서 할머니와 아빠 엄마 세 사람은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부지런히 도 싸워댔다. 아빠는 잘 들리지 않으니 큰 소리로 얘기했고 그런 아빠와 대화를 하려니 할머니와 엄마는 더 큰 소리로 얘기했다. 숟가락이 밥그릇에 부딪히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음식을 입에 넣고 쩝쩝 대면서도 기염을 토하며 화를 내는 어른들의 소리에 내 마음은 아침부터 단물이 다 빠졌다. 아빠가 화를 못 이겨 자리를 박 차고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도 나는 자는 척을 했다. 엄마가 밥 먹다만 입냄새를 풍기며 나를 깨우러 와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이고 이쁜 거 일어나라 쩝쩝. 하면 나도 아빠처럼 짜증을 확 내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잠도 덜 깬 채로 아침밥을 욱여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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