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심이의 사춘기 시절
#4
엄마는 지구가 무너져도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침을 안 먹는다고 하면 불같이 성을 냈다. 우리 집의 아침밥상은 저녁에 비해 거창했고 종종 삼겹살도 구워져 접시에 내져 나왔다. 고춧가루가 팍팍 들어간 경상도식 쇠고기 뭇국,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외에도 세 가지 정도의 김치 반찬이 늘 있었다. 엄마의 아침밥 철학은 어쩌면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겠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잠에서 깨지 못한 채로 밥을 먹고 학교에 가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자기 일쑤였다. 늘 속이 더부룩했고 부어있었고 피곤했다.
#5
고등학교 시절은 정말 먹고 또 먹었다. 나는 채워지지 않았다. 먹는 것이라면 일단 집어넣고 보았지만 내가 얻은 것은 불은 어묵처럼 퉁퉁 부은 얼굴이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참 많은 아이였다. 난 왜 태어났을까. 왜 이곳에서 살게 됐을까. 학교는 왜 가야 할까.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신은 있을까. 친구들과는 다른 음악을 들었고, 다른 책을 읽었고, 친구들이 동방신기 팬카페를 들락 거리며 까르르거릴 때 난 토요일 밤에 본 주말의 명화를 일주일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무엇도, 그 어떤 것도, 아무에게도 질문하지 않았다.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창피한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에야 중2병이라는 단어라도 있지 그때는 쿨한 척하는 내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면 오타쿠처럼 보일까 봐 겁나서 겉으로는 생각 없이 사는 애처럼 굴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허세라고, 낯부끄럽다고 놀렸다.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거나, 그 사람에게서 보이는 나를 부정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6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이름만 인문계인 실업고 비슷한 모습의 시골 학교였다. 나 때 입학생이 제일 적었고 학교를 뛰쳐나간 멋진 아이들도 몇 명 있어서 졸업할 때는 15명 인가 그랬다. 남 녀가 1 반씩 공학이었던 그곳에서 친구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었다. 나 빼고. 15명이니 다들 잘 지냈고 친하긴 했지만 나는 딱히 무리랄 것이 없는 포지션이었다. 혼자 책상을 창가로 붙여놓고 수업 내내 언니 몰래 가방에 넣어 온 언니의 씨디피로 크라잉넛과 리쌍의 음악을 CD가 닳도록 들었다. 조용히 가사를 읊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했다. 쉬는 시간엔 혼자 화장실을 가고 매점은 옆 반 남자애랑 갔다. 소풍 갈 때는 살짝 민망했다. 놀이동산에서는 누구랑 짝을 지어야 할지가 곤란했고, 소풍 후에 모든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흩어지고 나 혼자 거리에 덩그러니 남아 남은 시간을 피시방에서 허투루 보내다 미술학원엘 갔다. 친구라는 존재가 절실히 필요했지만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로 내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