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웃는 게 어색할 나이
경주에 살 때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은 '건천'이었다. 마를 건, 내 천. 그야말로 비도 눈도 잘 오지 않는 동네였다. 어릴 적 비료 포대를 깔고 못뚝 위에서 논까지 점프 비슷한 썰매 타기를 한 기억이 있긴 하다. 거의 5년에 한 번 꼴로 눈이 왔던 것 같은데 이곳에선 거의 5일에 한 번씩은 오는 것 같다. 누빔 바지에, 모자에, 목도리에, 부츠까지 신고 무장을 한 내가 이제는 익숙한 듯도 하다.
서울에 처음 상경했을 때 제일 낯설었던 건 비만큼이나 자주 오는 눈이었다. 눈이 이렇게 흔한 건가 싶을 정도로 자주 왔다. 처음엔 눈이 올 때마다 좋아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무뎌졌다. 특히 눈이 온 다음 날 출퇴근 할 때면 녹은 눈과 매연이 섞여 짙은 회색빛의 질척한 길을 걸으며 눈은 이제 그만 좀 왔으면 했다. 내가 눈을 지겨워하는 날이 오다니. 별 일이 다 있다 싶었다.
지금 사는 이곳은 서울보다 춥고 눈도 안개도 많은 곳이고, 우리 집은 산 아래 자리하고 있다. 눈이 자주 와 지겨울 법도 하지만 이곳의 눈은 도시의 눈과는 다르게 꽤 낭만적이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이 많아 좋다.
실시간으로 눈이 펑펑 내리던 어제는 엄마가 같이 있던 언니에게 눈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영상통화를 걸었다.
그리고 “아, 내도 눈 좀 보자. 눈 그게 뭔데. 어디서 내리는 건데.” 라며 남부지역사람 티를 내었다. 고작 핸드폰으로 보여주는 건데도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새삼스럽다. 엄마가 눈 오는 걸 저렇게 좋아했었나..?
그건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표현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좋은 걸 좋다고, 싫은 걸 싫다고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꼭 엄마를 닮아놓고도 저렇게 엄마가 호들갑을 떨 때면 시크한 척을 하기 일쑤다. 그렇게 좋냐고, 어린아이 같다고, 다정하게 대꾸해 주는 게 나에겐 어려운 일이고 동시에 지나고 나면 꼭 후회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핸드폰 너머 '봄날의 햇살'처럼 웃는 엄마의 얼굴은 간직하고 싶어 급히 찍어 보았다. 그날 밤, 핸드폰 화면에 찍힌 엄마 얼굴을 보다가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며 애써 웃어봐도 엄마만큼 이쁘게 웃어지지가 않는다. 주름만 돋보여서 에라 기분만 안 좋아졌다. 나도 엄마 나이가 되고 나면 저렇게 예쁘게 웃을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내 나이 30대 중반은 웃음의 과도기쯤 되는 시기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