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과 물마시기
6시가 넘어가자 금식에 신경을 써서 그런지
점점 배가 고픈거 같았다.
그래서 20-30분 간격으로
물을 한컵씩 먹었다.
물을 먹는 행동은 심리적 불안때문에
하는 대체 행동 같았다.
하나를 금지 당하면,
허용된 다른 하나를 통해,
금지된 것을 보상 받으려고 하는
이상 증상 같은 것.
음식 섭취를 금지당했으므로,
섭취가 가능한 물을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는 그런 행동 말이다.
과거에 맥주를 끊으려고,
동일한 양의 콜라를 먹었던 때가 있었다.
맥주를 끊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콜라에 중독이 되었다.
콜라에 대한 중독을 끊으려고
동일한 양의 탄산수를 먹었다.
콜라를 끊을 수는 있었지만,
아무 맛도 없는 탄산수는
콜라의 대체제도,
맥주의 대체제도 되지 않아,
다시 맥주로 돌아간 어리석은 때가 있었다.
외부로부터 나의 내부로 들어오는
부정적인 것에 대한 반작용은
단순히 중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거 같다.
무언가를 금지당하면,
무언가를 잃게 되면,
무언가를 부정당하면,
무언가를 고칠 것을 요구받으면,
우리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드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금지 당한 것 외에 다른 행동을 하든지,
잃은 것 대신 다른 것을 얻으려 하든지,
부정당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든지,
고칠 것을 부정하든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작용으로 인한
말과 행동은 상대방은 물론,
내 마음에도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본래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은 채,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셈이다.
결국, 두 문제는 서로 섞여서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거나,
잘해봐야,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는 채로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이 전부다.
반작용은 내게 오는 충격을
그대로 튕겨낼 때 생기는 힘이다.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내 마음이 내 마음에게
가하는 힘의 크기다.
선하고 긍정적인 것의 반작용은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부정적인 것의 반작용은
그 반대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것의 충격을
오롯이 나만 흡수하기엔
나만 아프다.
상대가 원망스럽다.
그대로 맞받아치는 반작용도 정답이 아니고,
오로지 내가 흡수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라면
남은 선택지는 가해지는 힘을 크게 약화시키는
완충지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연습해보며
긍정적인 진척을 보인 것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내 마음에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어.
괜찮아.
조금 기다려보자.
이것은 상대방을 이해하자는 것도 아니고,
바보같이 그냥 참자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현재의 나는 괜찮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키며,
행동하기 전에
잠시 기다리자는 것이다.
내 마음에 시간을 잠깐 주면,
즉시 반응하지 않게 되고,
즉시 반응하지 않으니,
가해진 힘이 상대에게 즉시 전달되지 않는다.
마음에 가해진 충격은
잠깐의 시간을 주면
그 힘은 처음과는 다르게 크게 약해졌다.
참자는 게 아니다.
화내지 말자는 게 아니다.
화를 내든, 복수를 하든,
소리를 지르든,
잠깐만 있다가 하자는 거다.
그랬더니, 즉시 할 행동의 힘이
크게 줄어들었다.
어떤 행동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극단적으로 힘든 상황,
힘든 사람과 마주하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극단적이지 않은 그저 그런 일들에는
꽤 효과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곧 8시가 되면,
물마저도 못먹게 될텐데,
난 그때 어떻게 하지?
물을 많이 먹었더니
점점 배가 불러온다.
이게 배가 고픈건가?
배가 부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