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
금식이 시작된 3시,
나는 온통 금식에만 신경이 가 있었다.
사실, 대장 내시경을 하기 하루 전날에
가장 힘들고 불쾌한 것은
약과 물을 역겹지만 억지로 먹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잠을 못자는 것인데
나는, 금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이건 무슨 심리인걸까?
먼저 다가오는 고통만 생각하는
단순한 존재인걸까?
아니면, 겪어야 될 고통보다는
잃게 될 것(음식)에 더 마음을 둘 수 밖에 없는
손실 회피 성향 때문일까?
난 참 예민한 사람이다.
예전엔 사람들이 나더러
예민하다고 했을 때,
기분이 상했었다.
괜히 문제 있는 사람 같고,
쪼잔한 사람 같고,
뭔가 특이한 사람인거 같아서.
놀리는 거 같아서.
근데, 중년이 되고 보니,
난 참 예민한 사람이다.
소심하기도 하고.
금식에 초점을 맞추니,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고픈가? 아닌가?
견딜만 한가?
여기에만 신경이 쓰였다.
4시쯤 되자, 배고픔이 몰려왔다.
물론, 진짜 배고픔은 아닌거 같았지만 말이다.
물은 먹어도 된다기에 물을 한 컵 먹었다.
그렇게 30분 마다 물을 한 컵씩 들이켰다.
본격적으로 약과 물을 먹어야 하는
8시가 되기전까지 아직도 4시간이 남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위는 몇시간의 금식만 하면
음식물이 모두 비워져
검사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장은 모든 것을 비워내야
대장 자체의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자동으로 비워지는게 아니라,
강제로 비워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대장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장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비워내야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문제가 있는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직장 동료 사이,
시댁과 며느리 사이,
처갓댁과 사위 사이,
친구 사이도
본질적인 진짜 문제를
서로 들여다봐야 하는데,
예전에 상대가 잘못했던 행동,
내가 느끼는 부정적 감정,
금방 상대방이 했던 말,
자기 합리화, 상대방에 대한 비난
이 모든 것들을 잔뜩 섞어 놓고,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고 내 말만 한다면,
과연 문제 파악과 해결이 가능할까?
서로 문제가 있는 관계에서 우리는,
언제나 여러가지를 섞어놓고
문제의 본질에서는 멀어진 채
귀막고, 자신의 말만 하다가
비극으로 치닫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마치, 대장은 하나도 비워내지 않은 상태에서
대장 내시경을 하는 것처럼....
대장을 전혀 비우지 않은 상태에서
내시경 도구가 대장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문제 확인과 해결을 위해서는
관련없는 요소는 전부 없애고,
근본적 문제 자체만 남겨야 하는 것은
우리 인생도 대장 내시경도 같다.
아....
고작 6시다.
물을 잔뜩 먹어서
배가 안 고픈 거 같지만,
배가 고프다....
이젠, 새로운 고통이 시작될
8시에 신경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