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상대의 잘못

어떻게 해야 할까요?

by 영순

우리가 받는 대부분의 상처는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고,

나는 상대의 말이나 행동으로 마음이 아팠고,

상대는 그것을 전혀 모르는 경우이다.




이런 일들은 대부분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나며,

함께 하는 시간이 오래일수록 더 많이 쌓여간다.


이런 조건에 가장 많이 부합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모나 형제자매, 배우자가 아닐까 싶다.




이런 경우의 반대 극단에는,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상대방의 잘못이 명백하며,

의도적으로 나에게 상처를 가하는 경우이다.




어느날 아침,

출근을 해서 주차를 하려는데,

내 자리에 다른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 주차공간은 명백하게

세입자나 건물주를 위해 마련된 개별 주차공간이라

지나가던 행인이 주차를 할 수 없을만큼

개인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버젓이 주차를 해놨다.

그래서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XXX 차주 되시죠? 혹시 세입자 이신가요?"


나는 이미 세입자가 아닌걸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싸움이 날 것을 피해 정중하게 물었다.




그 사람은 냉랭하고 불친절하게 아니라고 했다.


"지금 차를 빼주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더니,

매우 퉁명스럽게 "지금 빼라구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재차 물었다.

"세입자는 아니시죠?"


그랬더니, 그 사람은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세입자 아니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갑자기 화가났다.




"아니, 세입자도 아니신데 버젓이 주차하시고

지금 소리를 왜 지르세요?"


그랬더니, 그 사람은 오히려

내가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아니, 세입자 아니라고 내가 말했잖아요.

왜 두번씩이나 묻고, 아침부터 전화해서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에요."




그러더니,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이보세요. 거기 세입자들도 전부 주변에 주차하던데,

왜 아침부터 전화해서 이 난리에요?"




"이보세요. 제가 살인죄를 저질렀나요?

왜 사람 기분 나쁘게 아침부터 전화해서

소리지르고 이 난리에요?"




그때까지 난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나서 말을 하려는데,

정말 단 1초도 내게 시간을 주지 않고

자기 말만했다.




그렇게 통화를 하는데, 내 쪽으로 통화를 하며

다가오는 40대 정도의 여성이 보인다.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예뻐보이려고 화장을 잔뜩 했는데

일그러지고 인상쓴 그 표정은

살면서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런 표정이었다.




다가오자마자 내게 막 쏘아붙인다.


"아니, 여기 사는 사람들, 세입자들 전부

아무데나 막 주차하던데, 왜 나한테 난리에요?

내가 살인죄를 저질렀어요?

아침부터 전화해서 난리야...

차 빼면 될거 아니에요."




정말 1초도 주지 않고,

온갖 인상을 다 쓰면서 난리를 쳤다.




내가 했던 말은 딱 2마디였다.


"제가 살인죄라고 한적이 있나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왜 하죠?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니까

그대로 따라하신건가요?"


이 두 마디에, 그 사람은 당황하는 표정을

잠시 보이더니,

"아~ 짜증나게 아침부터 전화해서..."




나는 소리 지른바 없다.

아침부터 불편을 겪은 것은 나다.

상대에게 함부로 말을 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철저하게 패배자이며,

상처받은 사람이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간단한 사과를 하는

기본 소양조차 갖추지 못했다.


대화를 하면서, 내 말은 아예 안 듣고

다 잘라먹기에, 대화가 불가능했다.


자신이 아침에 잘못했고,

자신이 소리질렀고,

자신이 무례했는데,

전부 나더러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대화가 불가능하고, 자신의 말만 하며,

자신이 한 모든 잘못을 나에게 투사하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3분 정도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정말 분노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다.


사람이 이래서 폭력성이 생기는구나.

사람이 이래서 가학성이 생기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단순하게 보면 분노지만,

마음에는 상처로 남는다.

모르는 타인으로부터 입은 상처.


이 상처는, 다음 사람들 대할 때

불신의 마음으로, 예민하게, 공격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분명한 상처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성자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사람들이 내 인생에서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으며, 적절한 대처방법이나

해결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온전히 당할 수 밖에 없는 무력감....


그렇다고, 그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내가 모든 불편이나 피해를

감내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반드시, 그들과 부딪히게 되어 있다.




부모로부터, 형제자매로부터,

직상동료나 상사로부터,

배우자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고, 받고 있으며,

갈등으로 너무 힘든 것은

매일 매일 다가오는 이런 사람들때문에

손댈 엄두도 못내는 게 우리의 삶 아닐까?




내 인생에 무작위로 다가오는 그들...




명백하게 잘못했으며

명백하게 틀린 논리로

명백하게 상처를 주기 위한

저 사람들로부터 받는 그 많은 상처들을

도대체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부모로부터 독립하면,

직장을 그만두면, 이혼을 하면

적어도 그것으로 인한 고통은

멈추거나 줄어들지 않는가?


매일 매일 다가오는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삶이 힘들수록,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많을수록,
새로운 상처는 더욱 강렬한 고통으로
내 마음에 쌓여간다.

정말 마음의 치유는 불가능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