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재정의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입었을 때,
그 상처가 가장 빨리 치유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상처를 준 사람은
첫째, 진심이 담긴 표정이나 어투로
둘째, 사과를 한 후,
셋째, 치유에 필요한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아무런 의도없이 우연히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이 옳다고 믿으며,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되어온
가치관과 생활 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상대에게 사과를 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본래의 모습이나 행동과는
전혀 상반되게 일어난 일이면
사과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그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이고,
오랜 시간 형성된 것이라면,
사과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그가 믿는 것이고,
그 자신을 나타내는
정체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진심이 담긴 표정과 어투로
사과를 할 가능성은 극히 떨어진다.
당연히, 상대방의 치유 과정에 함께 하며
도울 가능성도 거의 없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항상 필요하다.
상처를 준 사람의 진심, 사과, 도움을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는지 모른다.
어디에 가시가 있는지,
어떤 행동이 공격적인지
정말로 모를 수 있다.
진심으로 사과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게다가 진심까지 요구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더 큰 갈등을 빚으며,
더 큰 상처를 입으며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상처를 준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상처를 준 사람은 사과를 해야한다는
공식이 성립되는데,
상대가 상처를 준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와 부딪혀 내가 아픈 것이라면,
그가 상처를 준 사람,
즉 가해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진심, 사과, 도움을 요구하며,
피해자로 고통만 호소하는 나 자신에게
치유란, 행복이란 먼 이야기가 아닐까?
치유란, 상대방에게서 얻는 것도 아니고,
정신과에서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서 그렇게 되기를 허락하는 것은 아닐까?
명백하게,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언행을 통해 입은
상처만을 상처로 명명하면,
우리는 많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치유해야할 상처도 줄어들고 말이다.
가해자,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치유할 상처가 어느새 사라져
밝게 웃을 수 있는건 아닐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