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1
바퀴벌레가 나왔던 첫번째 숙소에서 불결하고 찝찝해서 밤을 새다시피 했던 기억은 나의 여정 첫날밤을 가차없이 무너트렸었다. 주된 원인은 바퀴벌레였다.
두번째 숙소에서 잠을 청하려고 불을 끈 후, "여기는 밤에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갑자기 20여년 전 대학생 때 첫 자취방이 생각났다.
그 방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곰팡이가 많았으며, 결정적으로 외출했다가 불을 켜면 4-5센치 가량의 큰 바퀴벌레 여러마리가 싱크대 위와 방바닥을 돌아다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미처 사라지기전에 잡을 수 있는 바퀴벌레는 때려 잡았고 못 잡는 것은 그냥 두었다. 작은 창문으로 빛이 잘 들어오지 않았던 그 방은 늘 어두웠고, 불을 끄면 바퀴벌레가 나온다는 사실을 난 알았다. 밤에 잠들기 위해 불을 끄면, 당연히 바퀴벌레가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상태로 그 집에서 2년을 살았다. 바퀴벌레 약을 아무리 사다 붙여놓아도 효과가 없었다. 그저 눈에 보이면 때려잡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2년을 살았다.
단 한 번도, 더럽다거나 몸이 간질거린다거나, 예민해지거나, 집주인에게 항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에서 1-2센치 정도의 작은 바퀴벌레 두세마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첫날밤을 꼬박 샜고, 하루 기분을 완전히 망쳤다.
20년 사이에 내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같은 현상이 일어났는데, 20년 전과 지금의 나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나는, 사업, 직원, 사춘기 자식, 아내가 가하는 고통으로 죽기 직전에 베트남으로 왔다. 즉, 외부의 사건이 나를 죽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바퀴벌레를 떠올려 보니, 그것을 해석하는 나, 그것을 느끼는 나, 그것에 반응하는 내가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느끼거나, 즐겁게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당할 수 밖에 없는 100%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며,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0% 피해자라는 생각에 금이 가자, 작은 희망과 의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작지만, 치유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