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24

두번째 여행 원칙 - 부칙

by 영순

두번째 여행 원칙에는 부칙이 필요했다.




한국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돈계산을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은 마음대로 먹겠다'는 두 번째 여행 원칙에 부칙이 없다면, 역시 베트남으로 온 이유가 없다. 베트남 관련 카페에 보면, 식당에서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리는데, 한식 사진도 엄청나게 올라온다.




타국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어르신, 아이들, 예민한 사람들은 분명 한식당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내가 있던 곳과 전혀 다른 곳에 나를 던져두고, 그곳에서 천천히 다시 살아나야 했기 때문이다.




36일간 한국 음식은 일체 먹지 않았고, 심지어 생수도 한국 제품이 아니라 베트남 생수로 사먹었다. 나에게 한국 사람, 한국어, 한국 음식, 한글은 모두 고통이자 가해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휴.... 어쩌다 난 내 나라와, 내 나라의 언어, 내 나라의 음식, 내 나라의 글자를 이토록 싫어하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다.




'사람'




고객을 자꾸 잃어버리고, 인수인계도 하지 않고 사라졌던 직원들, 그 사람들

끝을 모르고 내 달리던 사춘기 자식, 그 사람

나를 돕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했던 아내, 그 사람




그들이 공통적으로 쓰던 언어 한국어, 그들의 국가 한국, 그들이 먹던 음식 한식




나는 36일간 베트남 음식만을 먹었다. 36일간의 치유에 베트남 음식도 큰 역할을 했다. 그 어떤 고급 음식을 떠올려도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2천원짜리 쌀국수만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무 지쳐 힘이 들땐, 고통스러운 것들로부터 철저히 나를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 그럴 땐, 완전히 새로운 것만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머물러야 한다. 반드시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