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베트남에 갔습니다. #23

두번째 여행원칙

by 영순

무너져가던 나 자신을 위해, 36일간 내가 지킨 두번째 여행 원칙은 다음과 같다.



어떤 음식이든 가격표를 보지 않고 주문한다.




한국에서는, 음식을 주문할 때 가격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주문했다. 가격 때문에 먹을 것을 못 먹은 적은 없지만, 더 가성비가 좋도록 메뉴를 구성한 적은 많다. 조금 더 먹고 싶지만, 추가 주문을 하지 않은 적도 종종 있다. 판단에는 언제나 가격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관련 카페에서 보면, 시장에서 살 물건의 목록과 어느 가격까지 깎아야 하는지 기준표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걸 다운 받아서, 구매에 사용한다. 이런 행동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돈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 1천원 내외의 돈을 깎는데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만 가능하다.




나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먹는 음식에서 돈계산을 하며 주문을 하는 것은, 베트남으로 온 목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물론, 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비싼 나라였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했다하더라도, 그 마음이 순도 100%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베트남은 내게 훌륭한 치료 국가였다.




36일간, 나는 어느 식당에 가든, 먹고 싶은 것은 가격표를 보지 않고, 메뉴 사진만 보고 시켰다. 먹고 싶은 게 여러가지라 매끼마다 2~4개의 메뉴를 시켰다. 주문하면서 행복했고, 기다리면서 행복했고, 모든 음식이 나왔을 때 행복했다. 먹으면서 행복했고, 계산할 때 가격을 듣고 또 행복했다.




36일간 여러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혼자 여행을 온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 가족 단위였고, 종종 커플들이 보였다. 혼자 식사하면서 메뉴를 서너개 시켜서 먹는 사람은 아예 보지 못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나는 치료 중이었으니까. 병원에서 이런 저런 검사와 수술을 하면서 의사와 간호사, 또는 다른 환자들에게 부끄러울 게 뭐가 있겠는가. 나는 위급한 환자인데 말이다. 위급한 환자는 "어머 창피해요. 어머 왜 이러세요." 이럴 수가 없다. 생존이 중요하다.




음식이라는 건, 따뜻한 음식이라는 건, 푸짐한 음식이라는 건, 신기하게도 마음을 채우는 물질이었다. 상황에 따라서 그리고 때에 따라서, 그 음식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36일간 매끼마다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