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 값 더위
땀을 흘리는 나 자신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이후로, 더위는 그저 하나의 환경일 뿐이었다. 하지만, 10월의 베트남 더위는 한국의 가장 더운 여름날씨보다 훨씬 더웠다. 국가에서 자격증을 줘야 마땅한,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장착된 '타인과 비교하기 기술'을 즉각 사용했다.
나같은 외국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땀을 흘리며 더위와 악전고투 하는 듯 했지만, 현지인들은 일체 땀을 흘리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온몸을 옷으로 가리는 것은 그렇다쳐도, 그 옷이 우리나라 11월에나 입을 듯한 두꺼운 옷을 입고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여러 날을 지내면서 여러 식당을 가고, 여러 현지인들을 보면서 알았다. 땀을 흘리지 않는 개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나라 국민들 거의 절대 다수, 아니 내 눈에는 국민 전체가 땀을 흘리지 않았다. 굳이 땀 흘리는 현지인을 꼽자면, 하루종일 땡볕에서 건물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 정도다. 그들은 땀을 조금 흘렸다.
며칠 동안, 더위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더워 죽을 지경인데, 저 사람들은 더워하기는 커녕, 왜 땀 한방울 흘리지 않지? 태어났을때는 우리처럼 더위를 타고 땀을 흘리다가 성장하면서 적응해서 없어지는 걸까? 아니면, 환경이 이러하니, 오랜 시간에 걸쳐 유전자에 각인되어 더위도 안타고 땀도 안흘리는 새로운 인간이 된 것일까?
더위가 힘들다는 것은, 덥지 않은 상태를 디폴트 상태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듦은 덥지 않은 상태로 끝없이 돌아가려고 하는 마음 상태에서 겪는 부작용 같은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여러 일과 사람들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내겐 극심한 더위였다. 그 더위는 멈출 줄을 몰랐다. 시원한 가을이 오길 바랬지만, 결국 가을을 맞이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고국을 떠나 도착한 이곳은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삶의 더위는 사라졌지만, 극심한 무더위가 있는 곳이었다. 아이러니했다.
문득 두 가지 더위가 내 마음에 겹쳐졌다.
베트남은 더울 수 밖에 없는 곳이기에, 이유가 무엇이든 현지인들은 더위를 그다지 타지도 않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두꺼운 옷으로 온 몸을 휘감아도 미소 지으며 살아간다.
우리 삶은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곳이기에, 이유가 무엇이든 그 더위를 받아들여야 한다. 삶의 더위가 없는 것이 디폴트가 아니라, 더위가 있는 것이 디폴트인 것이다.
베트남의 더위를 더 이상 맞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원래 늘 그 자리에 있는 녀석으로 생각하고 36일의 여정이 끝나면, 나는 더위를 좀 덜 타게 될까?
삶의 더위를 더 이상 맞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원래 늘 그 자리에 있는 녀석으로 생각하고 귀국하면 나는 삶의 더위를 좀 덜 타게 될까?
내 마음은 다시 실험을 시작했다. 실험이 완전히 실패한다 하더라도, 더위가 없는 것이 디폴트 값이 아니라, 더위가 있는 것이 디폴트 값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만으로도, 나의 삶은 이전과는 달라질 것이기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베트남 더위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