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눈물 3
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많지만, 성인이 되어서 울어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베트남의 바닷가에서 2시간 동안 흘린 눈물은 여러 감정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슬플 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다분히 꼬마였을때 믿었던 것이다.
내 자신이 너무 가엾고 안쓰러워서, 내 삶이 너무 슬퍼서, 타인에 대한 원망스러움에, 타인에 대한 분노 때문에, 타인에 대한 억울함 때문에, 수없이 많은 감정이 섞여서 눈물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 감정은 눌러야 되는 줄 알았다. 누르라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지만, 나의 성장 과정이나 우리나라 문화, 나의 성별, 그 모든 것들이 참으라고, 누르라고 말했다. 누르다 보니 그것이 익숙해졌고, 익숙해지다보니, 표출하거나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뼘도 채 안되는 가슴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나온걸까? 그동안 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눌러 담아온 걸까?
슬픔은, 절망은, 분노는, 좌절은, 원망은, 미움은 누른다고 눌러지는게 아니었다. 귀여겨 들어주고 소중히 날려보내야 하는거였다. 그래야 녀석들도 살고, 나도 사는 거였다. 누르기만 하니까, 녀석들은 사라진 것처럼 거짓쇼를 하고는 엄청나게 세를 불려서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복수를 해왔다.
부정적 감정이 올라왔을 때 적절히 해소하고 마음을 위하는 방법이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생의 절반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다니.
생의 나머지 절반이 있다면 지금이 절반 지점이겠으나, 곧 내 인생이 저물어간다면 평생을 모르고 산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내게 감사한 삶이 더 주어진다면, 마음 속에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은 잘 들어주고, 고이 보내주려한다.